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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님도 모기는 싫어했다
최형국(역사학 박사/무예24기연구소장)
2012-10-17 09:46:42최종 업데이트 : 2012-10-17 09:46:4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을이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계절이 온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고운 가을밤을 모기소리에 잠이 확 깨곤 한다. 어르신들 이야기에 가을을 알리는 절기 중 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 주둥이가 비뚤어진다고 해서 더 이상 흡혈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는데, 처서가 지난 지 한 달이 넘은 요즘에도 모기들은 제 세상인줄 알고 끝없이 귀가에서 엥엥 댄다. 

모기들이 피 빨아 먹는 이유가 산란을 위해 암모기가 영양흡수를 위한 것이라,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바람이 불면 월동준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 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방한능력이 높아지면서 집안에서는 눈 내리는 겨울까지 뾰족한 주둥이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모기들이 피를 빨아 먹는 이유가 어찌되든, 물리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 중의 하나다. 거기에 아까운 내 피를 빠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퉁퉁 붓게 만들거나 가려움을 더하는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이를 악물고 손바닥으로 모기사냥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혁군주라 일컫는 정조 임금님도 엄청나게 모기를 싫어하셨다고 하면 그 분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더 친숙해 보일 것이다. 
마치 어제 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하소연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처럼 말이다. 
심지어 하도 모기에 물리는 것이 싫어서 '증문(憎蚊-모기가 미워~)'이라는 시까지 남겼다면 작은 웃음까지도 나오게 할 일일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정말 모기의 엥엥대는 움직임을 명쾌하게 풀어 놓았다. 물론 한자로 쓴 한시이므로 필자가 재미있는 해석을 더해본다.

정조 임금님도 모기는 싫어했다_1
올해 수원화성문화제에 행차하신 정조대왕님
-모기가 미워 (憎蚊)-
                               작자 : 정조 임금님

그 형체는 드러내지 않고 소리만 남기며 엥엥대는구나 (不現其形但遺音)
어둠 타고 헤엄치듯 부리 놀려 방충망 속 깊이 뚫고 들어오는 구나. (乘昏游嘴透簾深)
....
모기를 미워하는 감정이 정말 잘 표현된 즐거운 시 구절이다. 그러나 다음 행에서는 역시 국왕으로써 정조 임금님의 날카로운 모습이 잘 드러난다.

세간의 많고 많은 악착같이 이익 좇는 무리들 (世間多少營營客)
권문세가들이 찔러 들어오는 것 또한 그 저심일 게다. (鑽刺朱門亦底心)

정조 임금님은 모기들이 피를 빨아 먹는 것을 권력을 가진 귀한 가문의 사람들을 비유하였다. 
쫓아내도 쫓아내도 귀 밑에서 엥엥대고,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쩍소리가 나도록 잡아도 잡아도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불시에 귀한 피 한 방울을 빨아 먹고 도망가는 모기들. 
딱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국왕의 눈을 흐리게 하는 그들이 꼭 모기들과 같아 보였으리라. 

문제는 역시 그냥 피만 빨고 가면 덜 밉겠지만, 꼭 가렵게 만들어서 상처를 덧나게 만드는 것처럼 국정운영에서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니 오죽했으랴. 
긴 밤 내내 모기와 씨름하는 정조 임금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와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기를 가지고 권문세족을 빗대는 그의 심정을 생각하면 역시나 일국의 국왕이라는 삶도 그리 쉽지 않았음이 살짝 이해가 된다. 

오늘밤 늦은 밤 귀가에 엥엥대는 모기를 쫓으며 또 다른 정조 임금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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