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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출퇴근 시간에 버스 타지마라
김재철/농학박사, 칼럼니스트
2012-12-24 08:34:05최종 업데이트 : 2012-12-24 08:34:0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시내버스 안, 웬 어른이 학생 옆 창문을 툭툭 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다. 
주눅들은 학생은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아픈 몸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라는 야속한 표정이다. 하지만 어른은 아랑곳 않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내 가까운 좌석의 아주머니가 비틀거리는 학생을 챙긴다. 언젠가 경험한 버스 안 풍경이다. 

나이 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가능하면 우격다짐으로 자리 차지할 생각은 접어 두었으면 한다. 바깥출입을 할 정도의 건강이면 잠시 서서 간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양보 받을 심사로 초조한 행동을 하면 인생이 초조해진다. 물론 몸이 불편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리를 비워주는 미덕은 필요하다. 기차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입석표를 가지고 좌석에 먼저 앉아 눈 감고 있으면 원래 승객은 난감하다. 
머리 허연 나도 난감한데 젊은이들은 얼마나 난감할까. 심지어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여학생들의 좌석을 승무원이 찾아주는 광경도 목격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이 들어 출퇴근 시간에 버스 타지 마라. 피곤한 어린 학생들 자리 빼앗기 십상이다'

동대문에서 수원행 전철을 탔다. 퇴근 시간 전이라 타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역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승객. 한 학생은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다. 오른팔이 여유가 있더라도 손잡이를 잡으면 깁스한 왼팔이 자극을 받을게 아닌가. 
내 나이 정도면 자리 양보 받을 연령 축에 들지만 재빨리 중앙처리장치를 가동했다. "학생 이리 와 여기에 앉아". 학생은 웃으면서 "괜찮아요" 하기만 한다. 

이번엔 학생 뒤로 서너 살 쯤 되는 여자아이를 걸리면서 한 아저씨가 끼어든다. 다시 중앙처리장치를 가동했다. "학생은 괜찮다니 아이를 여기 앉히세요" 아저씬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수원에 거지반 다 온 금정역에서 내리면서도 계속 고맙다고 한다. 진정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다음 날 집 근처 약국에 가게 되었다. 그때 깁스를 한 학생이 인사를 한다. 자세히 보니 어제 전철에서 자리 양보를 마다한 학생이다.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가 있나. 반갑기가 그지없다. 신기한 일이다. 어제 내가 자리를 권하지 않았으면 이 학생이 나를 기억할까. 약국에서 마주쳐도 전혀 누가 누구인지 모를 일. 게다가 지금 내가 그 학생 이야길 하듯이 그 학생도 친구들, 아니면 부모님에게 머리 허연 사람 이야기를 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애인한테 자랑했을 지도 모르고. 

얼마 전 발안중앙병원 현관. 두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가 들어선다. 
어정쩡하게 양쪽 발가락만을 사용하여 내딛지만 균형을 잡지 못해 접수대에 닫기도 전에 쓰러졌다. 로비에 있던 어느 누구도 달려들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내가 다가갔다. 그리고 바퀴달린 링거폴대를 내밀었다. 
다리뼈가 부러져 입원하고 있던 나는 깁스를 하고 링거를 꼽은 채 1층 로비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던 참이었다. 두 사람은 링거폴대에 의지하며 진료실까지 갔다. 아주머니는 진료실에 들어가면서도 계속 고맙다고 한다. 머리 허연 내가 쑥스럽다. 

흐뭇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6층 병실을 누른다. 그때 다급하게 뛰는 소리. 덜 닫힌 틈으로 보니 어느 아주머니다. 재빨리 열림 단추를 눌렸다. 하지만 고마운 기색도 없이 얼굴을 벽면으로 돌린다. 뒷사람을 배려하려 나서던 문을 잠깐 잡고 있을 때, 모른 체 먼저 지나가는 뒷사람의 그런 모양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발 깁스를 한 채 식판을 보관함까지 가져가기가 힘들다. 그런데 웬 구부정한 할머니가 식판을 받아들고 뒤뚱 뒤뚱 간다. 
내 것만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지만, 몸 불편한 사람 식판 반납을 도와주는 것이 무엇이 힘든 일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시골 할머니는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나이 들어 나이를 앞세우는 것은 마음의 때를 묻히는 일이다. 때를 묻히는 일은 위엄이나 권위를 부리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생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다. 
때가 묻기 전 깨끗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매일 매일 때를 벗기다보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노후를 달관하며 깔끔하게 살아갈 수 있다. 시내버스 빈자리가 없더라도 마음 편하고, 자리를 내줄 때는 때를 벗기 듯 개운하다. 

나이들어 출퇴근 시간에 버스 타지마라 _1
외국 여행중 현지 노인들과 느긋한 한때(맨 오른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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