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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핀 詩의 꽃
윤수천/동화작가
2014-01-19 10:11:25최종 업데이트 : 2014-01-19 10:11:2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조병화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집을 낸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58년에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낸 이후 2000년 '남은 세월의 이삭'을 내고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자그마치 52권의 시집을 내었다. 이만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조병화 시인이 시를 좋아하게 된 동기가 퍽 재미있다. 해방 후 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할 적에 50분의 수업을 마치고 다음 시간까지의 10분간 휴식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를 하게 됐는데, 이 때 문득 떠오른 게 시 한 편 읽는 것이었단다. 그리고 실제 경험해 보고 나니 그보다 더 좋은 휴식이 없더란다. 시야말로 가장 경제적인 문학이란 말도 그 분의 입을 통해 나왔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치료'라는 말이 참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물리 치료'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가 되었고, 급기야는 미술 음악 등 예술분야의 이름까지 달고 나와 '미술 치료'니, '음악 치료'니 하는 말까지도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만큼 정신적 황폐화 내지는 질병화했다는 말이 되겠다. 하긴 거리를 가다 보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무슨무슨 정신과 의원, 무슨무슨 심리치료라는 말이 이를 증명해 준다.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우리들의 정신 건강이다. 정신이 병들고 비뚤어지면 제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좀 심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도마 위의 생선을 요리할 때 쓰이는 생활용의 칼이 범죄자의 손에 쥐어지면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저 조병화 시인의 10분간의 시 읽기 습관을 우리들의 일상에 접목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테면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저 스마트 폰에 빼앗기는 금쪽같은 시간들, 저 텔레비전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까운 시간들을 그냥 둘 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의 시간으로 재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내 친구 H는 항상 호주머니에 시나 짧은 수필 한두 편을 넣어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짬이 날 때마다 수시로 꺼내어 읽곤 한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는 동안......H는 그 짧은 시간에 읽는 시와 수필의 맛이 너무도 좋다고 했다. 그에게 무료함이나 따분함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시 한 수가, 수필 한 편이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에 핀 詩의 꽃_1
버스 정류장에 핀 詩의 꽃_1

최근 들어 수원 시내의 각 버스정류장마다 시가 전시돼 일반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인문학 도시를 만들겠다는 수원시의 노력이 한걸음 시민들에게 다가간 행정의 일환이다. 

'그 어느 장소라도 가리지 않아요
당신의 눈짓이 머무는 곳이라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은 목숨
뜨거운 불꽃 하나 품고 있어요
여름 지나고 서리 하얗게 내리는 날
당신에게 바칠 매운 사랑
지독한 사랑 하나 몰래 키우고 있어요'

나도 '들꽃의 사랑' 이란 시를 보냈더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버스 정류장 4곳에 전시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들꽃을 노래한 시라서 들길과 가까운 외곽에 전시한 모양이다. 그 감각이 참 마음에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시 한 편을 읽혀 주자는 수원시의 애정을 보며 이런 게 시민을 위한 진정한 행정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보니 사소하고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나 동네에서 나누는 이웃 간의 아침인사 같은 것이다. 또 누구를 만나거나 회선 상으로 대화를 나눌 때의 저 친절한 말 한마디 같은 것이다. 기분 좋은 대화나 친절한 말씨는 꽃의 향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그 당사자들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사람 사이로 번지게 돼 있다. 현재 수원 시내버스 정류장마다 전시돼 있는 시, 그것은 다름 아닌 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수원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이 될 뿐 아니라 맑은 기운의 선물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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