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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저 꿈과 낭만의 대명사
윤수천/동화작가
2014-03-24 10:42:19최종 업데이트 : 2014-03-24 10:42:1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안타까운 일을 자주 보게 된다. 며칠 전 충남 예산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나자 손녀의 교복을 꺼내려고 들어간 할머니를 구하려고 들어갔던 손녀가 연기에 질식해 숨진 일도 그 중 하나다. 
손녀는 올해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파란 여고생이었다. 그러니 새 교복을 장만한 지도 며칠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새 교복을 꺼내오려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할머니. 그 할머니가 급히 나오지 않자 할머니를 구하러 불길 속으로 들어간 손녀. 할머니는 나왔지만 손녀는 끝내 시신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사건을 본 사람들 가운데는 "교복이 뭐길래."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그까짓 교복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다니,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노인네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현실적인 잣대로만 재자면 옳아도 백 번 옳은 말이다. 교복이야 다시 사면 되지만 목숨은 두 번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생각할 것인가? 아니다! 할머니에게 교복은 목숨 이상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손녀의 옷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올봄 고등학교에 입학한 새 교복이다. 그 교복에는 손녀의 꿈이 담겨 있고, 할머니의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런 옷을 어떻게 화마에 빼앗길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 세대들에겐 교복이란 게 그리 소중하지 않을지 몰라도 가난한 시대를 헤쳐 온 노년층에겐 특별한 느낌이 배어 있다. 교복 한 벌을 장만하기 위해 들인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 더 의미가 깊은 것은 어엿한 학생의 신분임을 알려주는 저 긍지의 제복이라는 점, 청운의 꿈이 담긴 미래의 희망이라는 점에 있다. 

 교복, 저 꿈과 낭만의 대명사_1
사진/최음천 시민기자

어디 그뿐인가. 교복은 자신이 다니는 소속 학교를 내타내 주는 고유의 제복이기도 하다. 해서 학교 대항 운동 경기라도 펼쳐지기라도 하는 날엔 남학생들은 교복의 앞가슴 단추를 풀어헤친 뒤 아코디언을 켜듯 양손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였다. 

교복에 대한 나의 추억도 참 많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새 교복을 입고 누나랑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박았다. 지금도 사진첩 속의 그 사진을 볼 때면 풋과일 같은 모습과 함께 가슴 설레던 청운의 꿈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아침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이 목청을 높여 강조하던 훈시도 생각난다. "제군들이 지금 입고 있는 그 교복에는 선배들이 이룩한 빛나는 전통과 설공의 정신이 배어 있다. 그러니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복에는 이름표도 달려 있었다. 내가 어느 학교 누구라는 이름표였다. 그 이름표는 세상을 향해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리는 명함이었던 것이다. 해서 불미스런 행동을 한 학생은 선생님으로부터 가차 없이 이름표를 뜯기곤 했다. 이름표를 뜯긴다는 것은 학생에게 최고의 벌이었던 것이다.

교복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스운 추억 한 도막이 있다. 이웃 중학교에 정 아무개 국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갓 입학한 학생들을 가르치러 교실에 들어가 보니 검정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다들 새끼 돼지로 보이더란다. 그래서 엉겁결에 나온다는 말이 "야, 너희들은 돼지 새끼 같고 난 돼지 애비 같다." 했더란다. 그 뒤부터 그 선생님 별명은 돼지 애비가 되고 말았다.

요즘엔 교복도 학교마다 개성을 살려 독특해졌다. 천편일률적이던 지난날의 교복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요즘 학생들이 갖는 교복에 대한 애정은 지난날보다 훨씬 얇아지지 않았나 싶다. 시대가 변했고 경제적으로도 그만큼 윤택해진 데도 이유가 있겠다. 
아니, 어찌 교복 하나 뿐이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물이 그렇게 가벼워지다 보니 관심도 적어졌다. 물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값도 그렇게 떨어졌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왠지 자꾸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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