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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뭐 줄 것 없수?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4-05-05 09:37:27최종 업데이트 : 2014-05-05 09:37:2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우리 부부는 한동안 충남 서천 판교농촌마을에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근처에서 동창모임이 있다 하기에, 차비하고 밀린 회비는 다 준비했느냐고 물었더니 별것을 다 묻고 있냐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입니다.

동창회 날 아침, 아내는 아침밥도 마다한 채 택시 불러 막상 판교역에 도착해보니 요금이 모자랐답니다. 아니 차비는 다 준비했노라고 큰소리 쳤으면서 말입니다. 할 수없이 택시비 잔금 1천200 원은 외상으로 하고 수원행 열차요금은 카드로 결제했답니다. 

얼마 후 배가 고파 열차 카페에서, 카레 밥 포장지를 뜯고 카드를 내미니 어? 열차 내 카드결제기가 고장이랍니다. 즉각 기지를 발휘하여 판매대 총각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아보고 애한테 전화해서 폰뱅킹으로 자동이체 했다고 득의양양 합니다(제가 상상한 모습).

그렇지만 아직 서곡에 불과합니다. 열차 객실을 오가는 여객전무에게 삼성동 가려면 어느 쪽 역이 가까운 가를 물었답니다. 아니 진즉 수원역에서 전철 타고 가기로 했으면서 묻기는 왜 물어봅니까? 여객 전무 왈 "영등포에서 전철 타는 것이 더 가까울 겁니다. 연장 하시려면 1천800 원 더 내셔야 합니다. 카드결재도 됩니다." 

다시 한 번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마냥 카드를 내미니, "그냥 넣어 두십시오. 저도 젊었을 때 한 푼도 없이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심정을 이해하니 그냥 가십시오." 하더니, 아무래도 미심쩍던지 다시 돌아와 기차표에 통과 싸인 까지 해 주고 돌아갔답니다.

일단 삼성역에 도착, 인근에 농협이 눈에 안 띄어 농협카드도 무용, 타행에서 수수료 천삼백 원을 뜯기며 현금을 확보했다나요. 그리고 무사히 동창모임을 마치고 판교행 기차를 타니, 이 무슨 인연입니까? 무료 연장하여 준 그 여객전무를 다시 만났답니다. "잘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판교역에 도착, 바로 외상 깐 택시를 타고 온다고 집에 있는 나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는 외상 깐 것은 절대 비밀이니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그런 말까지 나에게 합니다. 봐요, 얼마나 재미납니까. 인생살이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집에 오면 다시 그 택시 편으로 읍내에 가자. 그리고 외상택시 기념으로 맥주 한 잔 하자. 호프집에 도착하니 출발에서 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귀가 솔깃한데다 맥주 맛까지 기가 막히더군요.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읍내로 가면서 기사님이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이 편한 차림으로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고 보니 현금이 없더랍니다. 사정 이야기를 하자 주인 왈 "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에 또 오시면 됩니다." 
며칠 후 포장마차 주인은 양복쟁이에게 끌려(?) 정 회장 사무실로 갔답니다. 다음은 뻔한 이야기지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택시비 외상을 주었답니다. 

봐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우리네 삶에서는 우연찮게도 재미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거창하게 저탄소 녹색성장이니 이산화탄소 배출량까지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이 글을 읽어 본 아내 왈 "소재 제공했으니 나한테 뭐 줄 것 없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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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역 : 장항선 직선화 사업으로 시골간이역에서 현대식 건물로 새 단장, 2008년 11월 27일 현 위치로 역사(驛舍)이전. 옛 판교역 터는 판교특산음식촌 조성(냉면, 표고버섯이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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