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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도 승자만큼 아름답다
윤수천/동화작가
2012-08-05 15:48:49최종 업데이트 : 2012-08-05 15:48:4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승리를 목표로 한다.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과 겨뤄서 지려고 하는 선수는 세상에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최종 승리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선수들이 도중에서 탈락을 하게 마련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운동 경기를 볼 때 승자 편보다 패자 편에 더 마음이 간다. 승리에 도취해 있는 승자의 뒤편에서 쓸쓸히 퇴장하는 패자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땀을 남모르게 흘렸을까? 그 동안 그가 얼마나 즐기고 싶은 것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왔을까? 이것을 생각하다 보면 그들의 처진 어깨가 한없이 측은해 보이고 마음 같아서는 위로의 꽃다발이라도 안겨주고 싶어진다.

2012 런던올림픽이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하루도 쉴 새 없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는 경기장의 열기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더욱 뜨겁기 그지없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금메달은 경기 종목마다 단 한 개뿐이다. 그러니 그 외의 선수들은 입술을 깨물며 4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아니다. 개중에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비록 금메달은 아닐지라도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그래도 어깨를 펴고 활보할 만하다. 금메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메달선수 아닌가. 나의 관심은 4년간 불철주야 오로지 우승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고도 메달 밖으로 밀려난 패자들에 있다. 그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외로울까? 또 있다! 그들을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던 그림자 같은 조연들은 또 얼마나 실망이 클까?

패자도 승자만큼 아름답다_1
사진 TV화면 촬영(시민기자 박종일)

패자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주위 사람들일 것이다. 아무런 메달도 지니지 못한 채 그들에게로 쓸쓸히 돌아가야 하는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에 더욱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하지만 패자들이여, 그대들은 그 누구보다도 멋진 승부사들이었다. 비록 실력이 달렸거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거나, 심판의 오심으로 불운했거나 하는 등등의 작디작은 이유가 있을지언정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무엇보다도 정정당당히 싸웠다. 그만하면 됐지 않은가.

나는 오래 전 프로복싱 경기에서 본 한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하도 오래 되어 선수의 이름조차 까먹은,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였다. 두 복서는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의 격돌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런 초반의 탐색전을 거쳐 막 중반으로 들어서던 5라운드, 도전자가 챔피언의 주먹을 맞고 나무토막 쓰러지듯 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주심이 카운터를 끝낸 뒤에야 쓰러졌던 도전자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났다. 

감동은 그 뒤에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선수를 달려가 끌어안은 것은 뜻밖에도 승자였다. 그는 패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위로의 말을 보내는 것이었다. 쓰러진 패자를 뒤로 하고 링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승리의 기쁨을 보여주던 광경을 연상했던 관중들은 이 난데없는 장면에 처음엔 다들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어리둥절함은 이내 장내가 터져나갈 듯한 박수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기를 중계 방송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청자들을 또 감동시켰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군요!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있군요! 정말 멋진 챔피언입니다!"

살다 보면 각본 없는 드라마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때가 있다. 진정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자신의 주먹에 쓰러진 패자를 일으켜 세우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승자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패자의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된다고 하겠다. 

인종과 국가, 남과 녀, 연령을 초월한 이 세기의 인류 축제를 가진 우린 행복한 존재들이다. 이런 우리들이 더욱 자랑스럽고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눈물 머금은 저 패자들에게도 승자 못잖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줘야만 한다. 이유는? 올림픽의 역사는 바로 그들의 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찌 올림픽의 역사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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