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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시절이 그립다
양훈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
2013-04-15 13:14:35최종 업데이트 : 2013-04-15 13:14:3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제목만 보고 오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그렇게 폼 나게(?) 살아본 적 없는 인간입니다. 눈치 빠른 분들 짐작대로, 저 깍두기는 어릴 적 그 깍두기 맞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깍두기였습니다.

훈도야~! 노올자~~. 친구들은 그래도 꼭 저를 부르러왔습니다. 다방구, 술래잡기, 오징어생 따위 달음박질을 하거나 힘을 쓰는 놀이에서는 젬병인데도 말입니다. 뜀박질을 못 하니 그런 놀이 땐 당연히 깍두기였지요. 물론 제법 잘하는 놀이도 있긴 했습니다. 공기놀이 땅따먹기 같은, 주로 앉아 노는 종목들. 그러나 뭐 떨어진다고 놀림 받기 싫어서 잘 하지도 못하는 놀이에 깍두기로 꽤나 쫓아다녔습니다.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까지….

깍두기 시절이 그립다_1
깍두기 시절이 그립다_1

나 같은 아이들을 왜 깍두기라고 불렀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걸 굳이 알 필요도 없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지요. 잼잼, 깜보, 야도, 덴찌는 뭐 알고 썼나요? 뒤늦게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제대로 된 설명이 없더군요.

침채(沈菜)가 딤채가 되고, 다시 김치로 변했다는 설은 LTE시대의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깍두기는 정설이 없어요. 각독기(刻毒氣)에서 왔다는 풀이가 있기는 한데, 좀 수상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깍두기를 한자로 그리 표기한 건 아닐까요? 놀이 친구 '깍두기'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을 봤습니다. 원래 깍두기라는 게 김치 속으로 넣는 무채 남은 조각으로 담그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치 못한 존재를 깍두기라고 했다나요. 믿어지세요?

전 '구라'라고 봅니다. 깍두기들이 어떤 부분에서 기능이나 능력이 뒤처지는 건 맞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왕따' 소질이 있는 친구들이지요. 하지만 깍두기 제도의 방점은 '그들의 완전하지 못함'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놀이함'에 찍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완전치 못해서 깍두기라고 불렀다기보다는, 어떤 음식하고도 궁합이 맞는 깍두기 같은 존재여서 그리 불렀다고 보는 쪽이 훨 낫지 않겠습니까?

잠시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가지요. 흔히 예전 깍두기가 있었던 시절엔 '왕따'가 없었다고 말하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지속적으로 잔인하게  때리고, 빼앗고, '셔틀'을 시키는 일이야 덜했을지 몰라도 그 때도 '왕따'는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과거는 아름다워라 식으로 무턱대고 미화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왕따'라도 깍두기로 함께 데리고 놀았는데, 요즘 애들은 왜 그러냐는 한탄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부질없습니다.

예전엔 어울려 노는 무리나 놀이 방식이 오늘날과 달랐습니다. 그 땐 대체로 두세 살 아래위턱 조무래기들이 다 함께 어울렸지요. 물론 놀이 종목에 따라 동년배끼리만 하기도 하고, 남녀 구분도 뚜렷한 편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많게는 네댓 살 어린 아이들도 데리고 놀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동생들을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끼워준 것이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또래라도 기능과 능력이 모자라면 깍두기로 분류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깍두기도 못 되는 애들이 '왕따'였습니다. 얘들을 체계적으로 괴롭혔느냐 아니냐는 동네마다 달랐다고나 해 두죠.)

그러니까 정작 사라진 건 깍두기가 아니라 '누구든 함께 어울리도록 하려는 정신'이라 해야 정확할 겁니다. '함께 놀자', '함께 살자'.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요새는 이 말 자꾸 쓰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하더군요. 서글픈 세태지요. 그러니 학교 안의 '왕따'나 폭력이 사라질 리가 있겠습니까?

두서없는 글 그만 아퀴를 지어야겠군요. 깍두기 시절이 아무리 그리워도 과거를 되살릴 순 없습니다. 그게 반드시 바람직한지도 의문이고요. 다만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계속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깍두기의 범위부터 넓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끼리 공동체'가 아니라 '열려 있는 공동체'를 향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가리타니 고진의 말을 들려드리고 싶군요. <녹색평론> 128호에 실린 유창복 선생의 '마을에서 미래를 본다'를 읽다가 우연히 마주친 구절입니다.

"사랑은 타자, 또 다른 공동체에 속한 혹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은 삶의 규칙이 다르기에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위험한 도약 혹은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뱀발-깍두기의 정신은 사라졌지만 '깜보'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물론 '깜보'란 말을 요즘 애들은 들어본 적도 없겠지요. 그래도 '베프'가 '깜보'라 하면 단박 알아들을 겁니다. 사실 '깜보'는 '베프' 시대엔 상상하기도 어려운 배고픔, 고단함 같은 게 배어 있는 말입니다. '봤다! 못 봤다!' 기억나십니까? '깜보'가 뭘 먹는 걸 보고 '봤다!'를 외치면 나눠먹어야 하고, '못 봤다!'라 소리치면 안 줘도 되는…. 여의도 근처에 가면 여전히 이런 '깜보'들이 많다는 풍설이 지금도 파다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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