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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군주' 정조(正祖)가 몹시 그립다
최형국(역사학 박사, 무예24기연구소장)
2013-08-04 10:35:31최종 업데이트 : 2013-08-04 10:35:3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18세기의 유럽은 소위 잘 나간다던 '절대왕정'이 꽃을 피웠던 시기다. 그들은 군주를 '태양'이라 부르며, 강력한 국왕권을 세상에 부르짖었다. 그렇게 식민지 쟁탈을 위한 해양 대제국의 시대는 갈수록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18세기 조선에는 태양이 아닌 '달'을 추앙하며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 만 개의 하천을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존재)'이라 자처하며 새로운 조선을 꿈꾼 군주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조(正祖)다.

그런데 조선에서도 국왕은 늘 태양과 같은 존재였다. 이는 가끔 초절정 고수가 멋진 초식을 보이며 등장하는 무협지에서 말하는 이른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개념과 유사하다. 비록 조선후기 신하들의 권력이 아무리 강했다고는 하지만, 국왕은 늘 태양과 같은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약화되었던 국력이 후 숙종시대와 영조시대를 거치면서 일정정도 회복이 되어서 정조시대에는 이른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시기였다. 

문제는 정조 또한 '태양'으로 본인을 자처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유독 '달'에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일까? 조선왕조 500년, 아니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이 땅에서 국왕이 본인 스스로 밤에만 등장하는 고운 '달님'을 자처한 국왕은 오직 정조 뿐이었다. 뜬금없이 궁금하고 또 궁금해서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찾아보니, 그 안에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단서를 찾을 수가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보면 이렇다.

정조가 어느 날 신하들과 유교경전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였다. 어려운 말로 하면 경연(經筵)이고 쉽게 말하면 요즘 학교에서도 대세에 속한다는 '토론식 수업' 즈음 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날 유교경전 중 서경(書經)에 대한 집중 토론에서 정조가 '덕(德)'과 '선(善)'에 대한 질문을 신하들에게 던진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도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철학적 사유가 나름 멋들어지게 펼쳐진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토론에서 마지막에 신하가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달이 시냇물에 비치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달빛입니다. 일[事]은 비록 만 가지로 변하지만 하나의 근본[一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토론의 내용을 정조는 진정 감명 깊게 받아들인다. 이후 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큰 강이나 시냇물 혹은 작은 사발에 담긴 물의 형태가 곧 그들의 얼굴이고, 그곳에 하나씩 뜨는 달이 바로 국왕의 지극한 덕이고 선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달의 군주' 정조(正祖)가 몹시 그립다_1
수원 화성 화서문에 뜬 달을 보며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의 마음을 살포시 읽어 본다.

그리하여 태양은 그 과분한 빛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쳐다볼 수 없는 존재지만, 달은 누구라도 쳐다볼 수 있으며 수 만개의 물속에 뜬 달처럼 진실로 사람 하나하나와 소통하기를 바란 것이다. 정조는 그의 문집에 이런 말을 남겼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홍재전서, 10권' 

바로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나라가 진정 '덕'과 '선'이 살아 있는 정의로운 조선의 미래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3년 오늘, 달의 군주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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