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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노인이 되자,노년에도 행복하려면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3-09-04 15:06:48최종 업데이트 : 2013-09-04 15:06:4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우리 마을에서 시골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앵두마을이 나온다. 앵두마을은 마을 뒷산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어 과거 유월이면 앵두축제도 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앵두마을 초입에 멋쟁이 백구두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가끔 장터에서 한 잔 하는 것이 취미인데 항상 웃음을 띠고 긍정적인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우리 부부가 버스타고 읍내에 나갈 때면 가끔 만난다. 한번은 군민회관에서 개최하는 경노잔치에 참석해서 함께 점심을 먹자며 막무가내로 12시까지 와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뿐이랴. 읍내에서 우연히 만나자 맥주 한잔 마시자고 우리 부부를 끌고 간다. '아니 오전부터 맥주집 문을 여나요'. '아냐 가만 있어봐, 내가 아는 식당이 있어'. 

맥주가 몇 순배 돌아가고, 덕분에 대낮부터 얼큰해졌다. 그리고 백구두 할아버지는 '아무 아무 날 음식을 준비할 테니 우리 집으로 한 잔 마시러 와'. '아니 누구 생신이십니까?' '아니야 그냥 동네 사람들과 한 잔 먹으려고 하는 거야'. 

우리 부부는 앵두마을로 행차했다. 백구두 할아버지가 10여 년 전 심어 놓았던 자엽자두 나무 그늘 아래서 맥주 한 박스를 처리하였다. '맥주는 아들이 잔뜩 사다 놓았어'. 아주머니는 연실 찌개, 과일 등 안주 내오기 바쁘다. 
'거 술은 왜 갖다 놨어?' 하기야 언젠가 백구두 어른이 하도 친구처럼 대해 미안한 마음에 몰래 맥주하고 소주를 그 분 집에 두고 온 적이 있어 하는 이야기다. 

지난 봄 앵두 철에는 손자 녀석들이 따는 즐거움을 우리 부부에게 미리 느끼는 것일까. 앵두를 마음껏 따 가라고 해서 어림잡아 비료포대 한 자루는 가져온 적이 있다. 다른 집 나무에서 따면 안 되니 꼭 우리 집 나무에서만 따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이곳 앵두나무는 어렸을 적 보았던 재래종인 우물가 조그만 나무가 아니라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정도로 엄청나게 큰 개량종이다. 앵두 알이 크고 맛도 좋다. 돌아오는 길에 울타리 이곳저곳에 단풍나무 종자가 떨어져 싹이 돋은 것을 뽑아준다. 가져다 심으라고. 

여든 한 살의 세키 간테이가 쓴 '불량노인이 되자'를 보면 '불량노인'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넉넉하게 달관하여 살아가는 사람, 저자 그 사람이다. 코끼리는 진창에서 뒹굴며 온몸에 진흙을 발라 기생충을 제거한다. 저자의 경우 술집이 바로 그런 곳, 거기서 열심히 이야기 하는 것이 마음의 기생충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불량노인이 되자,노년에도 행복하려면_1
불량노인이 되자,노년에도 행복하려면_1

노년에도 최소 여섯 명의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한 사람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백구두를 즐겨 신고 장날이면 읍내로 나가 친구들과 커피 한 잔, 아니 술 한 잔 마신다는 일흔이 훨씬 넘은 앵두마을 할아버지. 진정 '웃는 얼굴이 좋은' 영락없는 '불량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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