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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시오, 영통 느티나무 옹(翁)”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6-28 14:05:59최종 업데이트 : 2018-06-28 14:01:54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영통구 단오어린이공원 내 느티나무가 26일 강풍에 쓰러졌다.

이 나무의 수령은 500년 이상으로서 보호수로 지정돼 있을 뿐 아니라 풍채가 늠름하고 아름답다. 그늘 또한 넓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17년 5월엔 산림청의 '대한민국 보호수 100選(선)'에 선정됐으며 보호수 이야기를 담은 책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 표지사진으로 실리기도 했다.

사나운 비바람에 쓰러지기 전 영통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사나운 비바람에 쓰러지기 전 영통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아쉽다. 삭막한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이뤄진 도시 공간에 위풍당당하지만 결코 권위적이지 않고 친근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이 느티나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바람에 주저앉았다.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으레 그렇듯 몸체에 어린이 서너 명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동공(洞空)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이 내부 동공을 막았지만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 나무의 나이는 1982년 보호수 지정당시 500살로 추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천년은 됐을 것이라 주장한다. 다른 지역의 1천된 나무에 뒤지지 않는 풍채이기 때문이다. 나무 높이는 33.4m, 사람 허리쯤에서 측정한 둘레는 8.2m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티나무에 큰 애정과 추억을 갖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여름을 났고 이곳에서 마을 대소사를 의논했다. 마을 공동체 결속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마을 안이나 동구 밖 큰 느티나무는 대부분 신목(神木)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를 하늘과 땅, 사람을 이어주는 영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이 신목 느티나무들은 전설이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영통 느티나무도 이런 존재였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영통 청명단오제를 이 나무 아래서 지낸다. 축제는 청명산 약수터에서 지내는 '산신제'로 시작돼 느티나무 앞 '당산제'로 이어진다. 지난 15일과 16일에도 제13회 영통청명단오제가 열렸다. 2005년부터 매년 영통청명단오제란 이름으로 행사를 개최해왔는데 이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역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의식을 갖고, 마을축제를 열어 즐겼다고 마을 고로(古老)들은 증언한다.

 

또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이 나뭇가지를 잘라 서까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때 나무가 구렁이 울음소리를 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런 얘기도 있다. 1930년대 땅주인이 이 느티나무를 서울의 나무상에게 팔아버렸다. 이때 당시 마을의 유지였던 오대영 씨가 "이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다. 돈을 물어줄 테니 베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단다. 나무상이 거절하자 작은 느티나무 몇 그루를 대신 주겠다고 제안해 이 나무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번 비바람에 의한 느티나무 피해는 또 있다. 화성행궁 신풍루 앞 느티나무 세 그루 중 한그루의 가지가 부러진 것이다.

화성행궁 앞의 느티나무는 사도세자, 정조대왕, 정약용과 얽힌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사도세자는 1760년 7월 온양행궁에 행차했고, 이를 기념해 느티나무 3그루를 심었다. 이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유배에서 풀린 정약용이 한양으로 가던 길에 사도세자와 느티나무 이야기를 듣고 정조에게 보고했다. 정조는 온양행궁 느티나무에 대(臺)를 쌓고 영괴대(靈槐臺)라 했다.

아울러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앞에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느티나무 3주를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도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사람의 힘으론 절대 막을 수 없는 세월에 노쇠해지고 사나운 비바람에 의한 천재지변이라곤 하지만 안타깝다. 특히 몸 전체가 무너지다 시피 쓰러진 영통 느티나무를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사고 직후 현장을 찾은 염태영 시장도 침울한 표정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복원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보존 방안을 강구하라고 당부했다. 이에 시는 쓰러진 느티나무 밑동은 보존하고 밑동 주변에 움트고 있는 맹아(萌芽)를 활용하는 방안과 후계목을 육성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느티나무 복원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강풍에 변을 당한 처참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강풍에 변을 당한 처참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강풍에 변을 당한 처참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강풍에 변을 당한 처참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수원시와 영통 지역 주민은 사고가 난 후 함께 느티나무를 위로하는 제(祭)를 올렸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시 소재 나머지 보호수 23주도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현장 점검을 진행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영통청명단오제 보존위원회 오이환 위원장이 지난해 9월 경기일보 류설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저는 '실향민'이죠. 옛 마을 모습이 남은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하지만, 저 느티나무에서 제 고향을 봅니다. 나무가 제 고향인 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 처참한 모습을 본 주민들 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고향을 잃었는데. 나도 마음속으로 고별사를 했다.

"잘 가시오, 영통 느티나무 옹(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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