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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화의 나라
구중서(문학평론가ㆍ수원대 명예교수)
2007-10-10 19:01:47최종 업데이트 : 2007-10-10 19:01:47 작성자 :   e수원뉴스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병자호란으로 성문을 열고 나가 굴복을 한 조선 왕조 때의 이야기다.
소설의 광고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약소민족으로 역사 안에서 겪은 치욕에 대해 우리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되새기는 일도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다.

지금도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주변 4대국으로 더불어 6자 회담을 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 추세 속에서 시달리기도 한다.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은 동북공정이라 하여 지나간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것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울릉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바위덩이인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한다.

이런 일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사정은 결코 단순한 시비꺼리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들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렇게 두루뭉술한 낙관 속에서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다.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조 누루하치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우리 민족의 첫 번째 수모도 아니다.
고려 왕조가 몽골에게 패전하고 80년 동안이나 시달리며 산 역사도 있다.
그러나 이 땅에 나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민족을 어떤 다른 민족이 통째로 어디에 옮겨 놓지는 못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형세도 달라진다. 그들이 쇠퇴하기도 하고 그들의 존재가 아주 소멸하는 일도 있다.

병자호란으로 우리나라 조선조에 치욕을 안겨 준 청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2007년 3월 18일에 발행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만주족의 '언어 소멸'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청나라가 곧 만주족의 나라였다.
지금 만주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산자쯔(三家子) 마을에 살고 있는 80대 노인 18 명만이 만주어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이 죽으면 옛 만주어로 기록된 200여만 권의 만주족 관련 문헌은 해독할 사람이 없어 소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만주족의 청나라는 한 때 중국 대륙을 다 지배했지만 문화적으로 대륙의 한족(漢族)에게 흡수되어 자신들이 언어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만주족이라는 그 종족마저 소멸해가고 있는 것이다.

원래 민족을 형성하는 가장 큰 조건은 '문화적 혈통'이다. 그리고 문화의 알맹이는 바로 언어이다.
언어적으로는 한국어ㆍ만주어ㆍ몽골어ㆍ터키어가 같은 알타이어족(語族)에 속한다. 서양의 언어학자 람스테트와 포페가 연구해 발표한 언어계통론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에 걸쳐 있는 알타이 산맥에 중심을 둔 이 알타이 어족은 한 때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
몽골과 터키가 유럽과 아프리카 북단에까지 진출한 때가 있었다. 몽골과 만주는 중국 대륙도 지배했었다. 조선반도에도 침입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형세를 보면 어떻게 되어 있는가.
만주는 언어와 종족이 소멸해가는 단계에 있다.
몽골은 경제면에서 볼 때 연간 국민총생산고(GNP)가 1천 9백 달러로서 2만 달러 수준인 한국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이다.
터키는 5천 달러이니 한국에 비해 4분의 1 정도이다. 이것은 이들 나라 사이의 생활수준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알타이어족권에 드는 나라들 중에서 한국이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있다.

한국어는 남ㆍ북에 걸친 민족의 언어로서 정확하고 풍성하게 소통된다.
한글은 민족의 문자로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하다. 한국의 이 언어와 문자는 컴퓨터 시대에 적응하는 효율에서도 대단히 원활하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넓지 않은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문화적으로 가장 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전기 구석기시대 이래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현대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모범적으로 성취한 나라이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세계에서 상위권에 들어 있다. 이와 같은 형세의 원천은 바로 '문화'이다.


■약력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
-수원대 학장 역임
-민족 예술인 총연합 이사장 역임
-수원대 국문과 교수

저서:
<한국문학과 역사의식> <역사와 인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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