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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상의 힘
정수자(시인․문학박사)
2008-09-03 11:17:11최종 업데이트 : 2008-09-03 11:17:1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9월은 또 다른 시작이다. 가을의 시작이고, 2학기의 시작이다. 
그래서 9월 1일은 8월 31일과 아주 다르다. 가을 기분에 긴장이 한층 따라붙는 것이다. 겨우 하루 차이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똑같지만 말이다. 

직장에도 신선한 긴장 같은 게 감돈다.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일손이 한결 민첩해진다. 긴 여름이 비로소 끝난 느낌이다. 늘어졌던 일상도 비로소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학교도 새로운 시작으로 신선해진다. 어수선하고 들뜬 개강 분위기를 비집고 간간이 부는 바람이 새롭다. 한낮 태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이제 시간의 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 

릴케의 시(「가을날」)처럼 "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이번 여름도 길었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낸 여름은 늘 길고 무덥고 지루했다. 또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은 여름의 끝쯤에 항상 보이는 상투적 표현이기도 하다. 
여느 여름보다 크게 덥지 않아도 올여름은 유독 덥고 길었다며 사뭇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삽상해진 가을바람을 더 크게 반기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넘기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을 재발견하는 지혜랄까. 그렇게 뭐 치우듯 여름의 미련을 털어내야 바짝 다가온 가을을 더 활기차게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스멀거리는 긴장을 다스리면서 단전에 힘을 주시도 하는 것이다. 
코앞에 쌓여가는 새로운 일에 대한 준비나 각오도 다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삶의 의욕을 스스로 북돋우는 힘이 아닌가 싶다.

일상 속 통과제의, 이는 계절의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같은 것이다. 
이런 마음의 의식 같은 것도 없다면 우리 일상은 너무나 지루할 것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축제를 만들고 나름의 방식대로 즐기며 일상을 반복할 힘을 얻는다. 
어제의 물에 오늘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으니,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자질구레한 일상의 안팎이 다시 보인다. 집어던지고 싶던 일이나 짜증만 일으키던 사람도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힘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데서 새로 솟는다. 
사표를 던질까, 투덜대던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 그게 변함이 없어 더 지겹고 힘겨웠던 일상의 저력인 듯하다. 
사실 여름에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지금 이 자리의 나는 없지 않겠는가. 이 일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전과 똑같은 자리에서, 전과 똑같은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선뜻 행복해지는 것이다.

일상의 반복이야말로 새록새록 고마운 삶의 확인이다. 
그럴 때 가슴 안쪽이 문득 찌릿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내 자리가 있다는 것, 내 가족과 동료가 여전히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감동이다. 
물론 떠난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이 더 많아 삶은 지속되고, 그들과 함께 가을을 또 건너는 것이렷다.

자, 다시 뛰어볼까. 9월 달력이 빼곡하다. 
한결 서늘해진 바람을 안고 뿌듯이 길을 나선다. 가로수에도 가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사람들 표정에도 가을의 빛이 서려 있다. 예서제서 가을의 전언이 향기롭다.

* 약력 :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저녁의 뒷모습』, 『저물 녘 길을 떠나다』,
         저서 『한국현대시인론』(공저), 『중국조선족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 1』(공저)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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