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칼럼]끝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김광기/시인, KAKC 사무총장
2009-06-01 10:02:39최종 업데이트 : 2009-06-01 10:02:3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끝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_1
[칼럼]끝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_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한다. 자신을 아끼고 자기 자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늘도 돕는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이해하고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아끼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갖는 것은 단지 자신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 중에서도 나를 아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또 나와 함께 세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라. 내가 이제껏 혼자 살아올 수 없었듯이 이미 나는 나 혼자만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꼭 누구 때문에 사는 삶이 아니라 나는 애초에 혼자서 이 세상에 올 수가 없었고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 수가 없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생각하며, 함께 존재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보다 하늘은 우리를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자살은 이 세상에서 단지 나만이 없어지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또한 자살은 절대 어떤 문제를 푸는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단순한 세상사였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단조로웠겠는가.

요즘 미디어에서는 자살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한달에 천여 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거기에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있는 유명 인사들까지 자살이란 뉴스를 터트리며 미디어를 들끓게 한다. 유명 연예인, 사업가, 정치인, 전직 대통령까지 사회에서 성공한 그들이 어느 날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만 허탈감에 빠지고 만다. 시쳇말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자살까지 했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해해 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살기 힘든 사람은 죽어도 괜찮겠다는 자기합리가 만들어지며 경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살기 힘든 시기가 오면 많은 사람들이 우선 자살부터 생각해보는 위험수위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 때의 좌절을 겪으며 살기 힘든 시기가 10년이 가는 것을 보았는가. 아니, 살기 힘든 형편으로 평생을 보낸다고 해도 그렇게 죽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구족화가 중에 한미순이라는 사람이 있다. 20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당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머리뿐이고 다른 부분은 본인의 의지대로 전혀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렇게 30여년을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있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의 완성도나 성과는 이미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온몸이 묶인 듯한 자세로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참으로 처절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한때는 그렇게 힘들게 사는 장애인들을 보면 차라리 죽지 고생스럽게 무슨 낙으로 저렇게 살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더 그들의 삶을 관심 있게 바라보면서 감히 내 삶의 잣대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찌 삶이라고 다 같은 삶이겠는가.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미처 살아내지 못한 몇 만 배의 가치를 지닌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도 고통스럽게 살았던 순간과 편안하게 일상을 보냈던 순간을 쉽게 비교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거기에 한미순 화가처럼 엄청난 장애를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의 도(道)로도 실현할 수 없는 경지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장애인이라 한다. 모름지기 삶이란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존엄해야 한다. 삶이 힘들다고 해서 절대로 자살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살은 스스로의 목숨을 거두는 의미가 아니다.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가장 좋지 않은 방식의 살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든 자살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 있으면 끝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 우리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는 과정에서 보면 아주 잠깐의 시간일 것이다. 나의 생에 있어서도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으로 평생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나의 삶은 나의 삶으로만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