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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밥 좀...
정수자/시인
2011-02-11 11:00:45최종 업데이트 : 2011-02-11 11:00: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떻게 이런 일이, 요즘 같은 세상에 굶어죽는 일이 일어나다니...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목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주세요." 이웃집에 붙였다는 쪽지가 가슴을 계속 후빈다.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몰렸을까.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우리 모두를 다시 무참하게 한다. 

돌이켜 보면 간간이 세상을 깨우던 비극의 재판이다. 작년에도 곽지균 영화감독부터 어느 무명의 영화 스태프, 그리고 음악인 달빛요정 등이 최 작가와 비슷한 상태의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이제 겨우 서른두 살의 젊디젊은 신예가 글쓰기에 전념하다 굶어죽는 세상. 아무리 지병이 있었대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 연봉은 300만원', 어느 무명작가의 자조어린 말은 그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계약 시 고료의 일부만 받고 나머지를 상영 후 지급하는 관행도 작가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큰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명쯤의 시나리오 작가가 대기 중이다. 대부분 낮에는 생계를 위한 허드렛일을 하고 밤이면 시나리오에 매달린다는데, 이름조차 못 올린 지망생까지 치면 훨씬 많은 사람이 불투명한 미래에 생을 걸고 있는 셈이다. 

영화노조 측의 말은 더 암담하다. "고인의 죽음 뒤에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만 쓰려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의 논리가 있다"며 곁들인 영화 스태프의 월급은 "52만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의 스태프들 착취 위에서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52만원은 무보수 스태프들이나 최고은 같은 작가들을 포함하지 않은, 그나마 받는 사람들의 월급이란다.  

추모나 대책 운운도 쓸쓸하기만 하다. 영화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그 비슷한 문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잠깐만 둘러봐도 '워킹 푸어'를 양산하는 사회 구조는 점점 심각한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중산층 진입은커녕 17평 아파트 하나 사기 어렵고, 심지어는 먹고사는 기본조차 힘들어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 '개인의 문제'로 몰며 '루저'의 열패감만 심어주니 양극화의 골은 점점 깊어간다.

한 작가의 죽음이 절망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 상황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무명작가만 아니라 시간강사며 직장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는 수많은 젊은이가 비정규직에 아르바이트로 일생을 견뎌야 할 판이다. 문제는 그런 젊은 백수에 비정규직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현실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만 더 많이 누리는 무한경쟁사회의 구조의 악순환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신자유주의의 산재(産災)"라는 어느 시인의 절규가 섬뜩하게 박힌다.

지금도 누군가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중인지 모른다. 독거노인에 독거젊은이까지 비슷한 비극을 방치한다면 그 국가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 검진비 100만원의 '동물병원'까지 등장한 나라에서 이 같은 죽음이 말이나 되는가. 오직 좋은 시나리오 쓰기에 골몰한 최 작가의 명복을 빌면서, '남은 밥'의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남지 않아도 밥은 따뜻하게 나누는 것, 제대로 된 국가라면 대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남은 밥 좀……" 이런 쪽지 없는 세상. 21세기에 그게 과분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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