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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마음을 나누는 법
홍숙영/한세대학교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2010-01-01 12:21:12최종 업데이트 : 2010-01-01 12:21:1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연말연시를 맞아 고아원, 양로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한 친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설거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양로원에 갔는데, 자원봉사자가 넘쳐 그냥 되돌아왔다고 푸념을 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겹다는 뜻이겠지만, 봉사가 왜 꼭 연말연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성장한 이후, 발전한 이후로 미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는 'generosity'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족함도 동시에 추구하는데 이는 '나눔'을 통해 채울 수 있다. 

'행복한 프랑스 책방'이라는 책에 보면 영국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갖는 관대한 마음이 기본적으로 어떠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대목이 있다.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며 런던에 도착한 에냐. 그러나 그녀는 일자리도, 먹을 것도 없이 거리를 헤매게 된다. 그 때 한 노신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영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외국인 통행자들을 관찰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관례가 있다고 설명한다.
노신사는 외국인 아가씨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음식을 나누고 코트를 벗어준다. 도움을 주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는 관용을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할 때, 외국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한 단체에 가입한 적이 있다. 연회비 만5천 원 정도를 내면 주 2회, 글쓰기나 회화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십 수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쟈니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친구이자 은인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사무직에 종사했던 쟈니 할머니는 주로 외국인 학생들의 작문을 교정해 주는 봉사를 하셨는데,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늘 사전을 옆에 끼고 살면서 보다 적합한 단어, 보다 명확한 표현을 연구하기 때문에 그녀와의 작업은 늘 즐거웠다. 

박사준비과정에 있으면서 논문을 준비할 때 쟈니 할머니는 100페이지가 넘는 내 논문을 꼼꼼히 읽어주고 단어와 문장을 고쳐주셨다. 분량이 많을 때는 오페라의 카페에서 만나 토론을 하면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는데, 내가 커피 값이라도 낼라 치면 손사래를 치며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사실 할머니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그녀는 내게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녀 덕분에 논문은 무사히 통과되었고, 이후에도 우리는 가끔 오페라의 일본 분식점에서 우동을 먹고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폭염이 심하던 여름, 쟈니는 세상을 떠났고 나는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힘들고 외로운 유학 시절, 친구이자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던 든든한 지원자 쟈니. 

그녀는 가고 없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보여주었던 따뜻한 사랑과 격려는 작은 결실로 맺어졌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그녀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을 도우며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generosity'는 수직 개념이 아니라 수평 개념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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