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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름다운 이유
임병석/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2008-04-29 16:22:35최종 업데이트 : 2008-04-29 16:22:3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기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름다운 이유_1
[기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름다운 이유_1
요즈음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땅의 자양분과 하늘의 기운을 받으며 피어나는 꽃이며, 하루가 다른 신록... 여자가 아니라도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새벽 4시30분~5시에 일어난다. 일요일에는 화산체육공원에, 평일에는 내가 어려서부터 자연을 배우고 인생을 생각한 곳 논두렁을 걷는 일로 시작된다.     
 
새벽을 깨우는 날짐승과 벌레들의 대 합창 향연.
계절이 바뀌고 인생도 변화하지만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추억 속의 그리움이 오늘도 아름답게 피어난다.
논두렁에 자라는 버드나무가 흐르는 물의 청량함을 더해 주는가 하면 이집 저집 뜰 안에 꽃들이 피면서 봄기운은 세상을 깨우기 시작한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꽃과 신록이 한창이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님의 시이다. 나도 꽃잎을 밟으면서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시를 보내고 싶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난이 주종을 이루고 선인장, 소나무, 버드나무, 아벤다 등 100여 그루의 크고 작은 꽃과 나무가 있어 햇살이 비쳐진 연록색의 잎새마다 빛깔이 아름답다.
그곳에서 정성스럽게 물을 주며 한그루 한그루 매일 싹이 돋은 식물들의 자라나는 모습이 새로워서일까?
마냥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냄새도 맡아 본다.
집안에 있어 특별한 소득방법이 없이 어린애 보듯 일일이 기생물들을 떼어주거나 잡아주거나 물을 주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면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시간이다.

얼마전 필자는 오후에 마땅히 할일이 없기도 해서 오랜만에 아내에 대한 배려라 할까 미안한 마음으로 쇼핑을 가자고 했지만 봄에 취해서인지 자라나는 식물에 취해서인지 꽃향기에 취해서인지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잠시 지나, 마음이 변해서인지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함께 나서자고 했다.
외출하면서부터 창밖을 보니 논밭에 아지랑이와 더불어 못자리가 한창이다.
박지성로에는 나무에 물이 올라 잎이 피기 시작해 삭막했던 도로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서니 그전 같으면 돌고 돌아 막다른 주차장까지 가야 되는데 한번 돌았는데도 주차장이 많이 비어 있었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가? 아니면 봄에 취하려 나들이를 나간 것인가........
아무튼 백화점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아내에게 오랜만에 생색 좀 내보려고 큰 마음먹고 옷 하나 고르라고 하였다. 별로 달갑지 않은가 보다. 당신이나 고르라고 사양했다.
늘 그렇지만 부부지간에 서로 양보하고 사양하는 것은 풍족하지 않은 살림을 하는 어느 집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부부지간의 정이라고 할까?

그렇게 매장을 지나치다 계절적으로 맞는 엷은 오렌지색의 멋이 조화된 옷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집사람이 괜찮아 보인다고 하면서 구매를 부추겼다. 아내는 순식간에 값을 결정했다.  필자는 숙달되지 않아서인지 물건을 살 때는 우물쭈물 뜸을 들이는 편인데 아내는 이런 결정에 시원하다.
바지를 맞게 재단해서 마무리까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상례다. 바로 입을 옷은 아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끼는 것은 새 옷에 대한 기대 심리였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위 아래로 오르내리며 말 그대로 아이쇼핑을 즐기고 빵가게에서 꽈배기빵 등을 몇 개 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매장에 도착했다.
약속보다 10분 정도를 기다리다 옷을 받고 확인해보니 실수로 재단에 문제가 발생했다.
 
기다리던 시간이 아까워서일까, 성격 탓일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매장을 등지고 나와버렸다.
집 사람은 화난 나를 매장주인에게 이해시키는 듯 했다.
주인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표정이었다. 다시 재단해서 며칠까지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하는 모양이다.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성격이 그렇다. 장소만 달라지면 언제 그랬던가 잊고 지낸다.
어느 날 저녁 8시쯤 되었을까? 누가 초인종을 누르길래 인터폰으로 얼굴을 보니 잘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고 집 사람을 찾아온 것 같기도 하여 "집사람이 없는 데요"라고 대답했다.
재차 집사람이 외출 중이라고 강조하고 문을 여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예의바른 반듯한 중년여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머뭇거리면서 옷 쇼핑백과 작은 케익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다시 기억이 났다.
며칠 전 찾았던 백화점 옷매장 주인이다.  
재차 "죄송합니다" 실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듯 소녀처럼 양 볼이 발그레했다.
그냥 택배로 보내면 서로 편할 것을 그 바지 하나 때문에 낯선 이곳까지 물어물어 찾아와야 했는가...
친절 때문에 감동했고, 그 감동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냥 입어도 큰 불편이 없는 옷을 재단문제 때문에... 후회하면서 '이런 멍청이...' 헛 세상을 살아온 내 모습에 따가운 질책을 해댔다.

남의 조그만 실수를 인정하고 불편 없이 받아들였으면 내 마음도 편했을 것을...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렸으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 것을...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인가? 그때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웠다.
나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원망했다. 그러면서 봄에 피어나는 모든 꽃과 같이 조화로운 세상에 함께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과 자연과 공간들은 나에게 교훈과 진리를 일깨워주는 스승일 것이다.
아직도 풋내 나고 꽉차있지 않은 내 모습,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니 남은 인생을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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