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칼럼]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
임병호/경기시인협회 회장
2009-09-14 09:26:18최종 업데이트 : 2009-09-14 09:26:1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_1
[칼럼]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_1
지난 9월 3일, 4일 이틀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아주 각별한 전시회가 열려 국회를 찾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시민들은 물론 낯 익은 의원들도 걸음을 멈추고 한참 구경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를 머금은 관람객들의 얼굴이 밝아 보기에 좋았다. 치매노인들이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작품들은 모두 명화였다.

그림제목들도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오래 전 엣날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들도 보였다. 모두 치매노인들이 추억 속에서 꺼낸 그림들이었다.
86세의 노인이 남편의 산소에 제사상을 차린 '여보', 댕기머리 처녀가  꽃나무 옆에서 누군가의 집을 바라보는 '첫사랑은 언제나 그리워',  두 남녀가 나무에 등을 기댄채 서있는 '수양버들', 보름달 뜬 밤 처녀들이 그네를 타고 강강수월래를 즐기는 '강강수월래', 무쇠솥 걸린 아궁이에 어머니가  불을 때는 '시래기죽 끓이는 어머니', 부엌에서  밥 푸는 어머니를 보고 있는 어린 삼남매를 그린 '배고픈 그때 그 시절' 등 그림들이 다양했다.

치매중증이 아닌 노인들의 작품은 가히 걸작이었다. '지혜없는 자는 명상이 없고 명상이 없는 자는 지혜가 없다. 지혜의 눈이 흐린 사람은 애욕에 탐익하며 다투기를 좋아한다. 명상과 지혜를 갖춘 자라야 열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지혜의 눈이 밝은 사람은 노력과 근신을 보배처럼 지킨다'는 문구까지 넣은 서일순 할머니의 '관세음보살', 십자가를 메고 고난과 부활의 길을 가는 예수의 생애를 14장의 도화지에 그린 황미숙·최선예 할머니의 '14처' 등 종교화가 사람들을 숙연케 하였다. 수원의 화성(華城), 민속놀이, 전통혼례, 농촌풍경, 가족들의 얼굴을 그린 작품 등 예날 엣적 소재들이 즐거움을 안겨줬다.

어른 마음· 아이 마음을 도화지에 담아 추억을 되살린 주인공들은 수원시 세류2동에 요람을 차린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의 지도를 받는 노인들이다.

노인들의 미술작품 전시회가 개막된 첫날 국회의원회관 1층 회의실에서 '치매미술치료·건강미술요법'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효녀·효부로 알려진 정미경 국회의원(한나라당 수원 권선구)과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3세대 문화사랑회(대표 김은경)가 주최·주관한 행사였다. 치매예방과 미술치료, 치매미술치료사의 성공사례, 건강미술요법 수강 노인들의 이야기들이 진지하고 재미있게 펼쳐졌다.
정미경 의원은 "치매는 오늘날 기억의 단절과 사회와의 단절을 가져오는 고령화 사회의 말 못할 고민 가운데 하나다. 치매노인과  부양가족들은 고립감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충분한 치료와 정부 지원을 필요로 하고"있다고 역설했다.
치매미술치료협회 신현옥 회장도 "치매는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다. 의사소통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어르신들은 가슴 앓이를 하게 되고  점차 마음의 문이 닫히면서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며 "굴곡진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 망각 속 저편으로 사라진 기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문화와 정서를 치유하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알려진대로 치매미술치료는 미술을 통해서 잊혀져 간 삶의 일부를 환기시키는 심리 의료술이다. 치매미술치료 과정에서 미술은 언어다. 그림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의 삶의 모습을 되찾게 한다. 치매의 특성상 그 치료가 매우 더디고 어려워 인내가 요구된다. 
그러나 1999년 설립한 치매미술치료협회는 회장이 사재를 털어 10년 세월을 미술을 통해 고령 노인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 많은 미술치료사. 봉사자들이 뜻을 함께 하였다.
각처의 경로당을 찾아 다니며 미술치료를 통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힘썼다. 매년 노인들의 그림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치매의 심각성과 치료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10년 봉사의 성과가 바로 국회의원회관 로비에 펼쳐진 치매노인들의 그림전이다.

"크레파스만 손에 쥐면 수전증이 멈춰진다"는 홍사진 옹의 말씀은 치매미술치료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한다. 국회의원회관 로비의 도화지를 채색한 옥수수밭, 감자밭, 원두막, 장독대 해바라기, 코스모스꽃. 백일홍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