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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어느 시인의 수원나들이
정수자/시인·문학박사
2009-10-22 08:37:56최종 업데이트 : 2009-10-22 08:37:5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한 시인이 수원을 찾았다. 수원이 고향인 시인과 어디를 먼저 갈까. 화성은 혼자서도 가끔 둘러보시니 특별 코스가 필요했다. 이제 수원도 돌아볼 곳이 많아져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시 승격 60년 행사에 역사, 서예, 화성박물관의 기획전도 풍성하니 말이다. 

단풍이 짙어가는 성벽을 찬찬히 거니는 것도 좋은 가을 산책이다. 정조의 어가(화성 열차)를 타고 성벽 바깥쪽을 시찰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의 만끽이다. 하지만 그런 산책을 미루고 화성박물관으로 먼저 갔다. 박물관은 늘 새로운 공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조용히 설레고 있었다. <건축> 특별강좌가 있는 날, 마침 신웅수 선생 강의가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모니터의 화성 사진 속으로 들어가셨다. 지난 번 김동휘 선생의 화성사진전을 꼭 보고 싶었는데 놓친 탓이다. 1950년대 후반에 초등학생이었다면, 지금과는 판이한 사진 속의 황량한 화성이 당연히 낯익고 그리운 풍경일 것이다. 시인은 무너진 성곽을 오르내릴 때의 햇살, 방화수류정 아래 수원천에서 잡던 물고기의 촉감 등을 다시금 선명하게 느끼는 듯했다. 화령전, 팔달문, 팔달산 등에서 노닐던 시간들이 더 새록새록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런 시간 속으로의 여행 중에 놀라운 얘기도 나왔다. 남창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팔달문 안에 들어가 마루를 쓴 후 계단에 앉아 있던 시간들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찍이 문화재지킴이활동을 한 게 아닌가. 선생님의 지시라지만, 요즘의 1문화재 1지킴이 같은 문화유산사랑을 초등학생들이 당시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1922년 대홍수에 떠내려간 화홍문을 시민들이 나서서 중건한 것처럼, 오래 되새길 수원의 시민의식 같아 절로 으쓱해지는 얘기다.          

시인은 정조의 글씨며 시문, 그림을 보면서도 감탄을 거듭하셨다. 이런 문예 군주 가슴에서 화성이 나왔고, 하여 수원이 더 기꺼워지는 것 같았다. 학예팀장으로부터 사진전과 정조 특별전 도록을 받으며 다음 전시에는 꼭 와봐야겠다고 말씀도 붙였다. 이렇듯 수원 시민만 아니라 수원을 찾는 외부인도 화성을 함께 즐기는 것, 그런 공유와 향유를 늘이는 게 중요하다. 좋은 기억이 화성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새롭게 누리는 길도 더 열 테니 말이다.

다시 이영미술관으로 향했다. 시인이자 큰 학자인 김달진 선생과 예술적 교유를 한 박생광 화백의 그림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장인 김달진 선생은 생전에 박생광 화백과 자주 만나 시와 그림을 논하며 즐긴 사이인데 시인도 가끔 동석했다고 한다. 미술관 관장님 역시 두 분의 자리를 즐거이 바라보며 같이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인과 관장 두 분은 정작 만난 적이 없는 사이건만, 가신 분들의 추억을 통해 비어 있던 시간을 그윽하게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미술관의 꽃이며 단풍들이 조금씩 더 붉어지는 듯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특별한 시간 여행을 제공하는 곳이다. 수원에도 그런 공간이 많아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뿌듯하다. 문학관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시인은 수원에서의 가을 산책을 마치며 흐뭇이 덧붙이셨다. 늘 웃는 상이시지만 오늘따라 미소가 더 좋아 뵈는 것은 수원에서의 시간들이 흡족하게 느껴진 때문일까. 이렇듯 수원을 찾는 이들이 웃으며 돌아가고 추억을 다시 찾으면, 화성도 한층 그윽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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