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산'이라는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도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내용은 이산 정조대왕이 목숨까지 노리는 정적들의 갖은 방해를 물리치고 조선조 제22대 임금으로 등극한 직후, 정적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긴박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드라마이긴 하지만 정조대왕은 왕위에 등극하기 전까지 또는 등극한 후에도 노론벽파인 정적들의 엄청난 견제를 받았습니다. 제가 '이산'이란 역사 드라마에 빠지게 된 이유는 우선 드라마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수원의 역사와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정조대왕과 사도세자, 채제공, 혜경궁 홍씨 등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정조대왕은 오늘의 수원을 조성한 분입니다. 특히 수원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축성했고 조선시대 가장 규모가 컸던 화성행궁을 짓기도 했습니다. 수원을 효의 도시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개혁과 혁신의 도시이기도 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수원 백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도시를 이전하고 행궁 등 관아 건물을 지을 때, 또 화성을 축성할 때 예전과는 달리 임금을 지급하면서 일꾼을 모집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예전에는 백성들을 강제 징발해 공사를 맡겼었습니다. 그 결과 수원은 물론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신도시 건설과 화성 축성을 차질 없이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정조대왕은 행정·군사·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갖춘 수원을 건설하기 위해 국비 6만5천냥이라는 거금을 수원 백성들에게 꾸어주면서 공업과 상업을 촉진, 18세기 말 대도회·상업 도시 수원의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정조대왕이 상공업에만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만석거, 축만제, 만년제 등 저수지를 만들고 둔전을 일굼으로써 오늘날 수원이 농업과학 교육의 중심도시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실학을 발달시켰으며, 양반, 중인, 서얼, 평민층 모두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집약시킨 조선시대 최대의 문예 부흥기를 이룩한 군주였습니다. 저는 드라마 이산을 보면서, 또는 화성을 보면서, 개혁과 혁신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정조대왕의 개혁정신으로 새롭게 탄생한 도시 수원에 사는 우리들은 그분의 정신과 의지를 이어받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공직자들이 표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입니다. 우리 수원시의 김용서 시장님을 위시한 모든 공직자들에게 이 실학정신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실학정신은 현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