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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팔달문 근처 시장골목을 걷는 즐거움
언론인 김우영
2019-09-17 09:22:06최종 업데이트 : 2019-09-17 09:43:31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팔달문 근처 시장골목을 걷는 즐거움

[공감칼럼] 팔달문 근처 시장골목을 걷는 즐거움

신문사에 매일 한편씩 사설을 쓰고 나면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고 한가한 건 아니다. 주1회 고정칼럼이 있는데다 여기 저기 정기간행물이나 단행본 청탁을 받아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다만 쪼개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시간이 날 때 내가 잘 가는 곳은 행궁동, 이른바 '행리단 길'과 팔달문 근처 시장, 화성성곽이다. 행리단 길에는 저녁에 한잔 할 수 있는 단골 카페와 막걸리집이 있다. 카페엔 나처럼 여행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골라서), 영화·문학·역사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꼬인다. 그 지척에 있는 막걸리 파는 집에는 이른바 '연식'이 좀 오래된 70~80대 '큰 형님'들이 주로 모인다. 언론계에 몸담았던 분들과 옛날 수원동네에 오래 살았으면 이름 좀 알만한 분들이 저녁 무렵이면 술값을 챙겨들고 등장해 후배들을 불러낸다. 아직도 정이 살아 있는 동네다.

글을 쓰다가 눈이 침침해지면 행궁동으로 슬슬 걷는다. 시간이 이르다 싶으면 팔달문 인근 시장골목으로 들어선다. 출출하면 한 그릇에 3000~4000원 정도 하는 칼국수집, 국밥이나 콩나물비빔밥·잔치국수·열무국수가 3000원 밖에 하지 않는 집, 40여 년 간 4000원을 유지하는 순댓국집으로 간다. 4000원짜리 비빔 냉면집도 있어 이번 여름 더위를 견디게 해줬다. 이 집들 말고도 수원 팔달문시장 곳곳에는 값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참 많다.​
지동시장 입구.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지동시장 입구.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제일 자주 가는 곳은 못골시장이다. 우선 사람이 많아서 좋다. 어깨를 스치며 좁은 시장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밑반찬을 사기도 하고 흥정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내가 잘 사가는 반찬은 어리굴젓과 멸치볶음이다. 그런데 뜻밖으로 5000원어치, 1만원어치 반찬을 사가는 중년이나 초로의 남자들을 많이 만난다. 이들이 모두 혼자 사는 이들은 아닐 터, 이젠 남자들도 스스럼없이 시장을 보러 나오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못골시장 중간쯤에 있는 가게 2층은 나혜석이 이혼 후 낙향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어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한번 씩 올려다보곤 한다. '표시를 해 놓으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몹시 귀찮아질라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옆에 붙어 있는 미나리광시장으로 건너간다. 그곳엔 단골 칼국수집이 있고, 눈을 마주치면 막걸리 한잔 하자고 이끄는 정겨운 인상의 고춧가루 방앗간 주인이 있다. 작은 골목이지만 손님이 줄을 서는 유명한 꽈배기 집을 비롯해 저가이발소, 뻥튀기가게, 고추가게 등이 있다.

그 옆 지동시장으로 들어서면 지동마을 발전을 위해 힘을 쏟는 정육점 주인이 손짓한다. 지동마을 책자를 만들면서 비롯된 인연인데 항상 '그때 그 사람들'과 날을 잡아 연락하라고 성화다. 그런데 막상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아 여태 빈 대답만 하고 있는 상태다.

지동시장엔 좋은 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많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대타운이 들어서 있다. 푸짐하고 맛있는 순댓국과 순대볶음 등을 생각하면 침이 넘어간다. 그러나 산책하다가 혼자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긴 미안해서 자주 가지는 못한다.

산책 중 빼놓지 않고 기웃거리는 곳은 팔달문에서 지동교 중간에 있는 과일 가게다. 먼저 가격을 보고 싼 과일이 있으면 5천원 한도 내에서 한 봉지 산다. 주로 토마토와 계절과일인 복숭아, 살구, 자두 등이다. 그 근처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찐 옥수수도 두 봉지 산다. 너무 많이 사면 시들거나 썩어 버리게 되므로 조금씩만 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살림꾼이 다 됐다.

왜 아니겠는가. 지난번엔 마른 새우로 볶음도 만들어 아내를 만족시켰고 최근엔 꽈리고추조림과 오래된 양파를 재료로 한 볶음도 만들어 합격점을 받았다. 상추가 많다싶으면 상추 겉절이를, 묵은 김치가 생기면 꽁치 통조림을 투하해 찌개도 만들 줄 안다. 다소 궁상맞지만 라면 국물이 남으면 거기에 냉장고의 몇 가지 재료를 넣고 음식족보에 없는 즉석국도 끓인다.

시장이 가깝고 화성행궁이 지척에 있으며, 행궁골목이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작업실이 있으니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화성 성내로 이사해 모여 살자는 이의 권유를 흘려버린 것이 후회된다. 이젠 집값,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니.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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