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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답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8-28 09:23:08최종 업데이트 : 2017-08-28 09:21:1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해 9월. 어미 길고양이가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담장 위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새끼라야 1개월은 되었을까 정도의 어른 주먹만 한 크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사스럽지 않은 고양이 울음소리에 둘러보니, 어른 키 정도의 담벼락 사이 틈새 밑에서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끼 한 마리가 좁은 틈새를 기어오르지 못해 울어대고, 어미는 담벼락 위에서 걱정스런 울음만 내지른다. 새끼 두 마리는 어미 곁에 쭈그리고 앉아 불안해하고 있다. 

좁은 틈새로는 어린아이라도 내려갈 수 없고, 결국 가늘고 긴 판때기를 이용하여 조심스레 새끼 고양이를 담벼락 한쪽 끝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담벼락 끝자락에서 칭얼대는 새끼를 판때기 끝에 얹어 살금살금 들어 올린다. 어느 정도 올라오자 팔를 뻗어 조심스레 고양이를 잡아보니 털만 무성했지 그야말로 몸뚱이는 한 주먹도 안 되나싶은, 흰색과 검은 색이 섞인 바둑이 무늬 새끼다. 새끼를 담장 위에 내려놓자 어미는 경쾌한 야옹 소리를 내면서 새끼들을 꽁무니에 달고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길고양이 가족

길고양이 가족


잉꼬가 의사 표시를 한다. 모이통 바닥이 보이면 찍찍 소리를 마구 질러댄다. 물통이 바닥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소리를 내는 지 알아듣고 얼른 모이통을 채워주어야 한다. 내가 밖에서 돌아오면 이내 아는 척 찍찍거리기도 한다. 이럴 때 손가락을 새장 사이에 들이대면 기다렸다는 듯 부리로 이리저리 톡톡 건드린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요즈음은 새장 문을 들어 올리는데 재미를 붙였다. 부리를 철장 문 밑에 걸치듯이 하고 짧은 다리를 뻗어 머리를 들면서 문을 올리는데 반쯤은 열린다. 만약 잉꼬 다리가 길어, 쭈그리고 있다가 일어난다면 문은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런데 수컷은 옆에서 구경만 하고 언제나 암컷만 들어 올린다. 언젠가는 문 열고 나올 수도 있으리라.

지난번에는 화장실에 긴다리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혹시 물벼락을 맞지나 않을까? 옮겨놓는다. 이번에는 방안 책장 근처에도 한 마리 나타났다. 책 꺼낼 때 압사 사고? 한쪽 구석으로 옮긴다. 그런데 하루 세끼 무얼 먹고 살기에 방안을 기웃거리나? 가끔 들락거리는 모기를 잡기라도 하는 걸까? 붓다와 더불어 동시대에 활약한 인도의 대표적인 자유사상가인 마하비라는 '생물에 의해서 생물이 상처받는' 고뇌의 세계를 깊이 반성하고 극단적으로 생명체를 존중한다. 이를테면 모기까지도. 인도 전설에 의하면 모든 짐승들이 인간을 어떻게 요리할지 모였을 때 모기만이 인간을 변호하였기에, 인도인들은 모기를 고맙게 여긴다고 한다.

이규보는 하찮은 이(蝨)까지도 '너 역시 붙어 살 데 없어서 나를 집으로 삼은 것이네. 내가 없으면 이것도 없을 것이라.' 하고, 슬견설(虱犬說)에서, '어제 웬 사람이 이글대는 화로를 끼고 이를 잡아 태움을 보고 나도 마음 아픔을 어찌 못해 스스로 맹세해 다시는 이를 잡지 않으리라' 하니, 손님이 말하길 '이는 하찮은 것이라. 나는 어제 한 불량한 사내가 큰 몽둥이로 떠도는 개를 때려죽임에 형세가 심히 불쌍하여 슬퍼할 만한 까닭을 말하는데 어찌 이렇게 맞대 나를 놀리는 것이오?' 하였다. 이에 '무릇 사람부터 소, 말, 돼지, 양, 곤충, 땅강아지, 개미까지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꺼려하는 마음이 모두 다른 것이 아니요. 어찌 큰놈 혼자 죽음이 싫고, 작으면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즉 개나 이의 죽임은 하나인 것이오' 라고 하였다.

그후 길고양이 가족은 고맙다는 인사인지 수시로 담 너머 마당에 놀러 왔다. 어미가 사료를 먹노라면 새끼들은 사료 그릇에 코를 들이대기도 하면서도 어미 곁을 떠나지 않고 젖을 빤다. 틈새에 빠졌던 바둑이 무늬는 경계심이 많고, 호기심 많은 호랑이 무늬 새끼는 내 옆까지도 살금살금 다가온다. 그러다가 호랑이 무늬, 바둑이 무늬 새끼 두 마리는 두 달도 안 돼서 며칠 간격으로 하루아침에 마당에서 죽어갔다. 어린 길고양이는 각종 병에 노출되어 쉽게 생명을 잃는다고 한다. 해가 바뀌자 혼자서 들락거리던 나머지 새끼 한 마리는 독립을 하였는지 눈에 안 띄고, 내 바짓가랑이에 얼굴을 비벼대며 친근감을 나타내던 어미조차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독립한 새끼 길고양이는 해가 바뀌어 7개월이 지난 요즈음에야 기억이 새로운지 다시 나타났다. 눈을 마주칠 때 재빨리 밥그릇을 건네면 슬그머니 다가온다. 안면이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나타난 길고양이

다시 나타난 길고양이


'어디선가 슬프게 우는 소리가 들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옷자락 안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가 옷 실밥에 목이 걸려 울고 있었다'. 평안도 구전설화이다. 이 설화는 미물에 대한 관심과 관찰에서 비롯되었다. 작은 생명 역시 삶의 일부로 끌어안고, 자연의 질서에 더불어 살아간다는 인식을 갖는 삶의 여유가 드러난다. 이규보는 말한다. '그대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달팽이 뿔을 쇠뿔 같이 보고 한 자 메추리를 대붕처럼 여겨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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