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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鳶), 날다
최정용/시인
2017-01-29 12:51:56최종 업데이트 : 2017-01-29 12:51:5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정유년(丁酉年) 설 연휴가 시작되던 날, 아내가 퇴원했다. 설 연휴가 지나야 병실을 탈출(?)할 것 같았던 안타까움은 병원의 퇴원 결정으로 조금 가벼워졌다. 비록 두 사람이 보내는 명절이지만 병실보다 집이 좋을 터. 수술부위 통증은 여전했고 밤이 더 심했다. 
다음 날 통증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고픈 마음에 평소 즐겨가던 화성행궁을 찾았다. 마음이 편해지면 몸도 나아지리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그 곳에서 두 사람은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연(鳶)을 만난 덕분이다. 

연(鳶), 날다_1
사진/김연수 시민기자

이미 입은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鳶)을 날리고 있네./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나는 예쁜 꼬마 연(鳶)들이/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 준다./울먹인 연(鳶)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 본다./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마음 속에 한 점이 되어라.(…)'  1979년 여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라이너스의 '연'이다.

이 노래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는 까닭은 노래의 첫 소절에 내 어린 시절이 수묵화처럼 묻어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속초에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있다. 바람 좋은 겨울 날, 동네 꼬마 녀석들은 이 언덕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 손에는 연, 한 손에는 얼레'를 들고. 당시 연날리기의 백미는 당연 '연줄 끊기'다. 연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실에 부레나 풀 끓인 물에 사기가루나 유리가루를 타서 서슬이 일도록 하고 연줄을 허공에서 엇갈리게 해 밀고 당기며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일종의 놀이었는데 당사자의 결기는 대단했다. 연줄이 끊겨 저 멀리 가뭇해지는 연을 보며 눈물 흘린 적이 몇 번이었던가,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 형이 있거나 친절한 아버지가 있던 친구들이 연줄 끊기에 훨씬 유리했다. 고사리 손이 만든 연과 경력을 자랑하는 분들이 만든 연에 상대가 됐겠는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날'던 꿈을 지닌 소년은 지금 중년이 돼 수원화성을 즐겨 찾고 있으니 인생무상이다.  

그날 화성행궁에서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연을 보며 잠시 통증을 잊은 듯, 아내의 표정이 조금 밝아져 나도 위안을 받았다. 다시, 연 덕분이다.

연에 대해 우리 역사는 이렇게 기록한다.
'삼국사기'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는 '진덕왕 즉위 1년,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 때 월성(月城)에 큰 별이 떨어져 왕이 두려워하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우니 불덩이가 하늘에 올라가는 듯했다.' 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이후에도 전쟁에 사용된 예는 또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고려 최영(崔瑩)이 탐라지방의 목호(牧胡 : 목축을 하는 몽골인)가 반란을 일으켜 이를 평정하려 했는데 탐라섬에 접근이 어려워지자, 큰 연을 많이 만들어 불을 달아 올림으로써 평정이 가능했다'고 기록한다. 일설에는 이 때 병사를 큰 연에다 매달아 적진을 공략했다고도 한다.

이밖에 연은 액(厄)을 쫓는 주술적인 도구로서도 사용됐다. 정월보름날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을 써서 해질 무렵 연실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내 액을 쫓고 복을 빌었겠다. 학문적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니 연의 용도는 여기서 각설하고.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만든 연은 마름모꼴 종이에 꼬리를 길게 붙여 날리던 가오리연이었다.  이처럼 동물모양으로 연으로 종류가 구분됐지만 명칭만으로 보면 70여 종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오리연 다음으로 방패연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류가 많은 것은 연의 표면에 색칠을 하거나 색종이 모양을 다르게 만들어 명칭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면 연 이마에다 색종이로 반달형상을 오려 붙이면 '반달연'이다. 빛깔에 따라서 검은색이면 '먹반달', 푸른색이면 '청반달', 붉은색이면 '홍반달'이라 부른다. 또 연 이마에다 둥근 꼭지를 오려서 붙이면 '꼭지연'이라고 한다. 그 빛깔에 따라 붉은 꼭지를 붙이면 '홍꼭지', 검은 꼭지를 붙이면 '먹꼭지', 푸른 꼭지를 붙이면 '청꼭지', 이랬다. 

지역과 날리는 사람에 따라 특이한 연도 있다. 통영의 거북선연, 봉황연, 용(龍)연, 접시연, 삼봉산 눈쟁이연, 방상시(方相氏)연, 편지연, 중머리연 등이 그렇다. 또 동래지방의 지네발연, 부산지방의 까치날개연, 황해도 장연지방의 관(冠)연, 나비연, 쌍나비연, 박쥐연, 제비연 등이 대표적이다. 

연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영적(靈的) ' 그 무엇(et was)'이 아닐까. 화성행궁에서 연(鳶)을 보고 달뜬 마음에 구절구절 말이 길었다. 강릉시 노암동 집 앞 마루에서 연을 만들어주시던, 이제는 '고운 꿈을 싣고 날아 한 점이 된' 할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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