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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돌아가는 배'를 생각한다
윤수천/동화작가
2017-11-26 10:57:26최종 업데이트 : 2017-11-27 09:48:20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돌아가는 배'는 섬에서 태어난 소년이 청운의 꿈을 안고 육지에 나가 꿈에 그리던 신문기자로 세계를 누빈 뒤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귀향하는 에세이 모음이다. 이를 쓴 이는 한국일보에서 청춘을 보낸 김성우 논설고문.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향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그의 이 명문은 그가 태어난 섬 욕지도 '새천년공원'에 문장비로 새겨져 있다. 남해의 절해고도 욕지도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의 공功을 주민들이 잊지 않고 성금으로 화답한 것이다.

'태어나보니 섬이었다. 둘러보아야 온통 바다뿐, 들리는 것이라고는 파도소리뿐, 사위(四圍)는 절해(絶海), 절대(絶對)의 바다가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나는 죄명 모를 수인(囚人)이었다. 눈 뜨면서 그 절망을 울었다'

이는 섬에서 태어나 철이 들었을 무렵의 소년이 느낀 감정이다. 그는 섬에 태어난 자신을 절해고도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했다.

'섬에서 자라는 동안 차츰 섬의 좌표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수평선이 섬을 빙 둘러싸서 나를 가두고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는 원(圓)의 중심에 태어나 있었다'


바다 위의 배(사진은 무료 사이트에서 받아옴)

바다 위의 배(사진은 픽사베이 이미지 저장소 무료 사이트에서 받아옴)

소년은 어느 날 세계지도를 가져와 방바닥에 펴놓는다. 그러고는 긴 막대기로 자기가 태어난 곳을 출발점으로 하여 직선을 그어본다. 시드니, 리버풀, 마르세유, 베네치아, 리우데자네이루, 샌프란시스코...직선은 세계의 어느 항구든 다 닿았다.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다 갈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고자하는 그의 꿈은 그렇게 비롯됐다. 그리고 소년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룬 뒤 자신이 출발한 지점(섬)으로 다시 귀향했다. 어린아이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자신의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어찌 김성우 선생 한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태어나고 결국엔 돌아가는 것, 우리는 이를 '일생一生'이란 말로 표현한다.


걸친 것 없이 벌거숭이로 선 11월의 가로수들을 보다 문득 떠오른 책이 김성우 선생의 저 '돌아가는 배'였다. 80년대 초 한국일보 일요일판(당시는 월요일판이 휴간이었다)에 소위 '명작의 무대'란 제목으로 세계문학컬러기행을 연재해서 문학애호가들에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선물을 안겨주던 프랑스 특파원 김성우 선생. 그의 독특한 문장에 매료되어 그의 글이라면 어느 책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 읽던 추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또 하나, 생각나는 책이 더 있다. 바로 헤밍웨이를 일약 노벨문학상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노인과 바다'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디아고는 카리브해海 바다 한가운데서 큰 물고기를 잡지만 상어 떼의 습격을 받은 끝에 뼈만 가지고 항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간결하고도 건조체 문장으로 그려 놓았다. 더욱이 이 소설이 돋보이는 것은 늙은 어부 산디아고를 통해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의지와 고독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죽음을 뛰어넘는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을 문학으로 증명해 주었다는 것.


나는 '노인과 바다'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연거푸 세 번을 읽은 기억이 난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산디아고 노인의 그 일거수일투족과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자신과 나누는 끝없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소설의 저 마지막 대미(大尾), 앙상한 뼈만 끌고 와서 절망은 커녕 무심한 듯 곤한 잠에 빠져드는 노인에게서 허망하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은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에 얼마나 안도했던지!


11월은 1자가 서로 마주 바라보는 달. 내 나름대로 내린 11월의 의미는 이렇다. 타인(1)이 되어 자기 자신(1)을 바라보라는 것.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라는 것. 새해 아침에 띄운 배에다 뭘 싣고 돌아왔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 그래서 마지막달인 12월은 한 해를 정리한 뒤 새해를 설계하라는 것. 이게 과연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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