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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시 승격 70년, 그리고 정조대왕, 이병희 의원, 심재덕 시장
언론인 김우영
2019-08-26 08:59:06최종 업데이트 : 2019-08-29 13:47:43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수원시 승역 70년, 그리고 정조대왕, 이병희 의원, 심재덕 시장

[공감칼럼] 수원시 승격 70년, 그리고 정조대왕, 이병희 의원, 심재덕 시장

내 고향은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 옛적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수군 기지인 수영(水營)이 설치돼 있었고 그래서 수영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동네엔 실제로 토성도 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됐지만 어렸을 적에 이 토성에서 전쟁놀이를 할 정도로 원형이 그런대로 보존돼 있었다.

얼마 전 수영리 인근 발굴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집 자리와 유물이 다수 발굴되기도 했는데, 내 어렸을 적 장마가 끝난 후 토성근처에서 놀다가 청동으로 만든 창을 하나 주워 엿 바꿔 먹은 기억도 있다. 아, 그때 그게 뭔지 알았더라면...

어찌됐거나 유년시절을 거기서 보내고 시험을 치러 수원북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장안문 옆 아버지가 일하던 차량정비 공업사의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수원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수성고등학교 때 잠시 수영리로 들어갔다가 군대 제대 후인 20대 중반 혼인과 동시 다시 수원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원을 떠나 본 일이 없다.

돌아갈 고향도 없어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내가 살던 집이 어디쯤 인지도 알 수없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 버린 것이다.

내가 수원에 살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장안문 밖은 논과 밭, 심지어는 말을 기르는 마구간까지 있었다. 아버지와 술친구였던 '용씨 아저씨'는 말마차를 끌고 짐을 날랐다. 지금으로 말하면 개인용달사업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근처에 영화역이 있어서 말 관련 업종이 남아 있던 것이다. 당시엔 그 길이 1번국도임에도 도로는 형편없는 상태였고 장안공원은 그냥 논바닥이었다. 무너진 성벽을 오르내리며 놀았고 부서진 장안문 옆 적대에서는 반 친구와 서열 정리를 위한 결투도 벌였다.

그 때만해도 대략 한 사람만 거치면 모르는 수원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인구가 적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2019년 6월 30일 현재 수원시 인구는 123만8376 명이다. 1949년 8월 15일 수원읍이 시로 승격될 당시 인구가 5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66년 수원시 전체인구가 12만7733명이었음을 생각할 때 실로 엄청난 인구 증가가 이루어졌다.
 13일 수원시청에서 열린 수원시 승격 70주년 기념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강제원

13일 수원시청에서 열린 수원시 승격 70주년 기념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강제원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승격70주년기념특별기획전.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승격70주년기념특별기획전.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지난 15일은 수원시가 시로 승격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70년 동안 인구는 25배로 늘어나 전국 최대 기초지자체가 됐다.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 첨단 산업이 공존하는 광역시급 도시로 성장했다.

지금의 수원이 있기까지 기념비적인 일들이 있었다. 1967년 6월에는 서울 세종로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수원시는 명실상부한 경기도 수부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수원지역 이병희 국회의원이 인천과의 치열했던 유치전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병희 의원은 무임소장관도 역임한 바 있어서 수원지역에서는 '이병희 장관'이라고 불리는데, 비단 경기도청 유치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연초제조창이 수원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능력을 행사했다.

뿐 만 아니라 일제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무너진 수원화성을 복원한 공로가 지대한 인물이었다.

수원을 세계 속에 빛낸 또 한명의 인물은 수원문화원장과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한 심재덕 시장이다. 심재덕 시장은 수원문화원장 시절에 수원천 복개 반대운동과 서호 개방운동, 화성행궁 복원사업을 펼쳤으며 직접선거로 치러진 초대 수원시 민선시장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이 모든 일을 현실화 시켰다.

심시장은 시장 재임기간 중 월드컵 경기장을 짓고 월드컵 경기를 유치했으며, 수원에서 화장실문화운동을 일으켜, 수원이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가 되도록 했다. 퇴임 후에는 세계화장실협회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집도 화장실 변기모양으로 짓고 '해우재'라 이름 지었다. 그의 사후 해우재는 수원시에 기증됐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수원의 새 관광명소가 됐다.

심시장의 빼놓을 수 없는 공적은 1997년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이다. 등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로 날아가 위원들을 설득해 등재를 성공시킨 일은 드라마틱하다.

생전에 그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수원컨벤션센터도 건립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하늘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정조대왕과 함께 이병희·심재덕 선생은 수원을 위해 하늘이 내린, 수원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확신한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시승격, 70년, 정조, 이병희, 심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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