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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팔달문시장, 어머니는 찐 옥수수를 팔았다
언론인 김우영
2020-08-10 13:17:43최종 업데이트 : 2020-08-10 13:17:43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팔달문시장, 어머니는 찐 옥수수를 팔았다

[공감칼럼] 팔달문시장, 어머니는 찐 옥수수를 팔았다
 

강원도가 고향인 ㄱ선생이 형제의 첫 수확이라며 옥수수 한 상자를 카페 ㄷ으로 가지고 왔다. 말끔한데다 작은 미술전시회가 끊이지 않을 만큼 분위기 있는 카페지만 자칭 'VVIP'인 우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떤 음식도 마련해준다.

 

이날도 주인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옥수수를 즉시 삶아 내왔다.


 옥수수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팔달문시장으로 사진을 촬영하러 가는 중 마침 통닭거리 용성통닭집 앞에서 종업원 아주머니가 옥수수 껍데기를 벗기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한컷 찍었다.

옥수수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팔달문시장으로 사진을 촬영하러 가는 중 마침 통닭거리 용성통닭집 앞에서 종업원 아주머니가 옥수수 껍데기를 벗기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한컷 찍었다.
 

잘 관리한 치아를 옥수수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정말 예쁘고 탐스럽게 여물었다. 반을 뚝 잘라 하모니카 불듯이 뜯어 먹다가 문득 옛 기억이 울컥하고 떠올라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 땅 한 평, 집 한 칸 없는 '삼팔따라지' 집안으로 시집와 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셨다.

 

이북에서는 지주로 잘 살았다고는 하지만 맨몸으로 내려온 아버지의 가족은 증조부모, 조부모, 아버지의 형제 5남매 등 대가족이었다. 지금은 모두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셨겠지만 아마도 그리 반갑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만큼 삶이, 시집살이가 녹록치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에 어머니는 늘 잠이 부족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대식구의 밥과 국, 반찬을 준비해야 했다. 식사는 부엌 아궁이 위에서 대충하고 허리 펼 틈도 없이 논과 밭을 기어 다녔다. 둘째를 낳은 다음날도 똥지게를 지고 밭으로 나갔다는 한탄을 몇 번 들었다.

 

남의 집 농사도 돕고 양식이나 돈을 받아 오기도 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화성시 봉담면 수영리엔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의 넓은 옥수수 밭이 있었다. 동물 사료용이었다. 한여름, 동네 사람들을 고용해서 옥수를 베어 운반하고 써는 작업을 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말복 무렵의 중노동은 일꾼들을 탈진시켰다.

 

어머니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을 다녔다. 방학 때였으므로 내가 동생들과 함께 보리밥에 김치나 짠지, 또는 고구마 순 무침이 전부인 점심을 날랐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되면 커다란 물주전자와 밥통, 나와 동생 허리춤에까지 옥수수를 감시원 몰래 채웠다. 감시원이 어찌 모를 수 있으랴.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갔겠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시험을 치러 수원북중학교에 진학했다. 시골아이가 수원시내에 있는 북중에 합격하자 동네에서 작은 잔치가 열렸다. 면장도 우리 집에 왔다. 당시 북중은 경기 남부권의 명문중학교였기 때문이다.

 

합격자 발표를 본 후 난생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어봤다. 어머니는 드시지 않았다. 노래 가사처럼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 하셨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늦은 오후 친구들과 걸어서 팔달문시장에 들렀다. 당시는 팔달문에서 부터 지동시장 다리까지 노점상인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시골에서 광주리에 채소와 잡곡 등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와서 파는 아주머니들이었다.

 

 

한쪽 구석에 낮 익은 모습이 보였다. 앞에 펼쳐 놓은 찐 옥수수는 아직 팔리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인은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지 못했다. 황급히 시장을 벗어났다.

 

어머니는 밤 12시 쯤 몰래 옥수수 밭으로 숨어 들어가 옥수수를 땄고 집에 와서 풀 더미 속에 감췄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무쇠 솥에다 쪘다. 내 밥을 차려 놓고는 옥수수를 머리에 이고 남문시장에 나가 자리를 잡고 팔았다.

 

오전에 모두 팔고 집에 와서 식사를 한 뒤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날은 오후가 되도록 팔지 못한 채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며 졸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점심도 굶었을 터.

어머니가 옥수수를 팔던 팔달문시장. 40여년 전 저기 왼쪽 어디쯤엔가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옥수수를 팔던 팔달문시장. 40여년 전 저기 왼쪽 어디쯤엔가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를 모른 척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얼마 전 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야 술 힘을 빌려 겨우 말을 꺼냈다. 모두들 가슴이 먹먹한 듯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또는 원고를 쓰다가 눈이 침침해지면 동네 산책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행궁동 행리단골목과 화성성곽을 따라 걷는다. 수원천과 팔달문 인근 시장도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다.

 

어머니가 찐 옥수수를 팔던 장소는 팔달문에서 지동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왼쪽 떡집이 있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치다 보면 아직도 어머니가 초라한 행색으로 옥수수 광주리를 앞에 놓고 앉아 졸고 계시는 듯하다.

 

2012년 남들은 꽃구경 떠난 그 봄에 이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이제 쯤 돈 걱정 없는 부잣집 마음 넉넉한 도령으로 환생하셨을라나.

 

ㄱ선생, 비 오는 날 끙끙대며 가져온 귀한 옥수수를 맛있게 먹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내게 옥수수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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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김우영, 팔달문시장,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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