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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산(麗岐山)에 특별한 인물의 묘가 있다?
‘고무신 박사님’, ‘꽃씨 할아버지’라고 불린 우장춘 박사가 주인공이다.
2019-05-20 16:07:41최종 업데이트 : 2019-06-04 10:48:44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 진흥청 내 여기산에 우장춘 박사의 묘가 있다.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 진흥청 내 여기산에 우장춘 박사의 묘가 있다. 입구의 안내표지판을 보고 산에 오르면 된다.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 진흥청 구내에 있는 여기산(麗岐山)에 특별한 인물의 묘가 있다. 바로 우장춘(1898~1959) 박사의 묘다. 20일 오전 11시. 기자는 조지영 마을해설사와 함께 우 박사의 묘를 찾았다.

기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장춘 박사를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과학자로 배웠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한 과학자는 우장춘 박사가 아니라 일본 교토대의 기하라 히토시(1893~1986. 유전학자) 박사다. 어떻게 해서 잘못 알려지게 되었을까?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해 왔고, 우리나라는 500여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재배해 먹었다고 한다. '연산군일기'에 수박 재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씨없는 수박으로 알려진 우장춘 박사의 삶과 정신을 엿볼 기회다.

씨없는 수박으로 알려진 우장춘 박사의 삶과 정신을 엿볼 기회를 갖기 위해 여기산을 올랐다.

1950년 일본에서 귀국한 우 박사는 종자 산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적을 보여줘야 했는데, 바로 이 기적이 '씨 없는 수박'이었다. 과학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자들은 사실과 다른 기사를 대서특필하게 되었고, 그 뒤로 우 박사를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으로 믿게 되었다.

이제 우장춘 박사는 1935년 '종의 합성'이란 논문을 써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기초를 제공한 훌륭한 과학자로 알아야 하며, 박사의 삶을 통해 학문에 대한 열정과 나라 사랑, 부모에 대한 효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조지영 해설사는 "우 박사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겠죠?"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꽃씨 할아버지, 고무신 박사님이라 불린 우장춘 박사의 삶이 궁금하다.

'꽃씨 할아버지', '고무신 박사님'이라 불린 우장춘 박사의 삶이 궁금하다면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여기산으로 가면 된다.

기자는 위인전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어릴 적부터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자식'이란 욕을 들었고, 관동대지진 등 큰일을 겪으며 차별대우를 받았죠"라며 "조선인들이 일본 땅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고, 일찍 여읜 아버지 나라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명성황후(1851~1895. 고종의 비)가 살해될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우범선(1857~1903)은 우 박사의 아버지다. 그는 일본의 앞잡이로 낙인찍혀 조선 땅을 떠나야 했고, 자객 고영근(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우 박사는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방황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종묘회사에 취직해 일하다가, 45년 패망한 일본을 지켜보며 아버지 나라에 가기로 맘먹는다. 광복을 맞이한 아버지 나라가 부족한 식량문제로 시급한 상황에 있음을 알았기에, 식량 해결과 좋은 씨앗을 개발하고자 귀국을 실행한다.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고무신 박사님'이라 했고, 먹고 살기 각박한 시대였지만 꽃을 가꾸는 데에도 정성을 다해 '꽃씨 할아버지'라고도 불렸다는 우 박사는 벼 품종개량이 성과를 이뤄 식량문제를 해결해 가기 시작했고, 돌아가시기 전 나라에서 주는 훈장을 받았다.

"조국이 나를 인정했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셨는데, 그의 묘비에 새겨진 이은상(1903~1982) 시인의 추모시에서 우 박사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산 선사유적을 알리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청동기 시대 집터와 토기가 출토된 여기산 선사유적지 표지판이 눈에 띈다. 경기도기념물 제 201호로 지정되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수원화성 건설당시 여기산에서도 돌을 떠서 옮겨갔다.

1796년 완공된 수원화성에서 필요한 돌을 뜨던 장소에 여기산도 포함된다. 돌을 자르기 위해 쐐기를 박았던 자국이 희미하게 보인다. 우장춘 박사 묘역 근처에 가까이 있다.

여기산을 내려오며 기자는 "수박의 꽃말이 무엇인지 알아요?"라고 조지영 해설사에게 물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조 해설사를 대신해서 "큰마음"이라고 답해주었다.

조 해설사는 "일본인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고, 조선인 아버지의 나라에서 열정을 바친 우 박사의 마음이 담긴 꽃말이네요"라며 "여기산에 우 박사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고, 과학자가 꿈인 어린이들이 한 번쯤 다녀갈 만한 장소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여기산 숲에 오면, 우리나라 농업과 농학 발전을 위해 애쓴 특별한 인물을 만날 수 있고,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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