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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
'2016 수원화성방문의 해' 수원 곳곳 돌아보기
2016-03-07 16:16:20최종 업데이트 : 2016-03-07 16:16:2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수원의 진산 광교산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야사에 의하면 광악산 등으로 불리다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치하하다가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목도했다. 이에 왕건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광교(光敎)'라 하고 이때부터 바뀌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어쨌든 그런 연유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광교산은 '여든 아홉 암자'가 골골이 자리했다고 전해올 정도로 신앙의 산이기도 하다.

그중 용인시 신봉동의 서봉사에 주석했던 현오국사와 수원시 상광교동의 창성사에 주석했던 진각국사는 고려시대 국사로서 '현오국사비'는 보물 제9호로, '진각국사비'는 보물 제14호로 지정되어 광교산의 격을 높이고 있다. 걸출한 두 국사가 주석한 산이었으며 불교전래 이후 불교문화의 정수를 꽃피운 현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4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4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창성사지'를 찾아간다. 수원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한남정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창성사를 만나러 간다. 지난해 여름에 만나본 문화재 발굴(한신대학교 박물관)조사가 어디까지 진척됐으며, 새롭게 밝혀진 것은 있는지...13번 버스 종점의 한 식당에 다다른다. 어디서 그리 많은 이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비닐하우스 공간마다 인파로 가득하다. 

사바세계를 벗어나자 곧 도솔천 불국토의 세상이 이어진다. 오직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한 두 사람이 오간듯한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수원에 사는 행복이다.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 이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청정한 산세를 만날 수 있다. 슬그머니 도망친 겨울 끝자락을 잡고 있는 포근한 봄바람이 가벼운 입맞춤을 시도한다. 상쾌하다.

경칩(驚蟄)날 세차게 내린 비로 인해 흠뻑 빗줄기를 빨아들인 골짜기다. 그로인해 발끝을 내디딜 때마다 두꺼운 카펫위를 걷는 듯 푹신하다. 하루 종일 걸어도 힘 하나 들지 않는 그런 산행길이다.
"엇, 산중턱에 저런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다니!"
누군가 물이 흐르고 있는 고무호스를 잘라 버렸다. 산에 오르는 아무나 누구나 이용하라는 배려로 보이지만 아마도 저 아래에서 용수로 쓰이던 것이리라. 

산행하기 가장 좋은 날씨라 그런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금세 창성사지가 코앞이다. 어라, 지난해 우측에는 발굴조사가 시작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펜스 안에 비석까지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앞면은 '보물 제14호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로 뒷면은 '조선총독부'라 쓰여 있다. 깜짝 놀랐다. 그동안 몰랐던 창성사 진각국사비의 원래 위치가 확인된다. (진각국사비는 현재 화홍문 위 방화수류정 옆 언덕으로 옮겼음) 
가람의 형태가 석축 위로 드넓게 펼쳐졌다. 발굴하면서 나온 기단석, 주춧돌, 옥개석, 와편 등이 곳곳에 쌓여 시간이 멈춘듯 했다.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1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1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2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2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3
광교산 창성사, 역시 보통 절은 아니었구나!_3
 
진정 이곳이 명당이었음을, 절터 맨 위쪽 산등성이에 서면 그 위세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영주 부석사처럼 무량수전에서 소백산 자락을 장쾌하게 바라보는 그런 세계가 이곳에서도 똑같이 펼쳐진다. 바로 위쪽에도 그 위쪽에도 전각은 이어져 있었을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게까지 오기까지, 불심이 가득한 공양거리들을 이고지고 부처님께 당도했으리라. 

발굴단이 조심조심 파헤쳐 간/ 흙 속에는 돌멩이들 속에는/ 기와 조각도/ 깨진 사기그릇도/ 잠자러 들어간 애벌레들도 있지만// 잠에서 아우웅 기지개 하며 깨어난/ 천 년 전의 바람과/ 그때 그 가을 햇살도 보였다// 푸스스 머리칼 털며 고개 든/ 생각도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러므로 내가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천 년 전의 가을이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무던히도 이곳을 찾았다는 김우영 시인은 고은 시인, 정수자 시인 등과 함께 펴낸 공저 '광교산 기슭에서(경인엠앤비)'에서 '출토, 창성사지'라는 시에 발굴 현장을 묘사했다. 
시간을 거슬러 불었던 그때 그 바람이 잘생긴 소나무 사이로 내내 불었다. 눈을 감고 오롯이 받아들였다. 당대 그 위세를 그리며. 
창성사, 보통 절은 아니었던 게다.

2016 수원화성방문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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