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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 22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수원 일번지 길’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수원 곳곳 돌아보기
2016-03-14 16:52:39최종 업데이트 : 2016-03-14 16:52:3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행궁동 생태교통마을부터 수원역 로데오거리까지

수원의 진면목을 찾아 타지에서 온 이들이 '수원의 일번지는 어디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소개하겠다. 
"사통팔달 팔달문 인근!"이라고.
수원사람들이 흔히들 부르는 '남문', 그 인근이 수원 일번지로 자리매김한지는 퍽 오래됐다. 조선시대 삼남길의 맥이 이어져 경부선이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수인선과 수여선의 출발지이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220년 전 정조의 화성건설이 도로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까 남문을 중심으로 한 수원의 일번지 역사는 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성장속도의 역사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다. 
생태교통 마을로 불리는 행궁동 골목길에서 남문로데오거리를 지나 향교거리와 수원역 로데오거리까지인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장구한 세월이 그 안에 있다. 전국적으로 골목길의 재발견이 열풍인 가운데 세월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수원의 일번지길을 만나보자. 

걷자, 22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수원 일번지 길' _1
생태교통마을 행궁동에는 '애기똥풀' 인형극장도 있다

생태로 갈아입은 행궁동, 힐링 공간으로 으뜸

화성건설 후 '성(城) 안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 성안에는 좀 있고 자존심이 있는 집안들이 살았다. 성안과 성밖의 차이는 존재했다.

수원의 관문 장안문을 통과하면 신풍· 장안동 일대로 들어서는 장안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첫 번째 골목부터가 '행궁동 생태교통 마을'이다. 2013년 9월 한 달 간, 우리시대 가장 큰 도전 '자동차 없이 살아보기' 실험을 성공시켜 '생태교통 마을'이란 이름이 붙으면서 세계에 그 이름을 알렸다. 

정조 때부터 이어진 영화(榮華)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이름도 생소한 생태교통 축제가 관과 주민들, 사회 각 분야 NGO(순수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개최되면서 이 일대가 확 변했다. 차별화된 공방들과 찻집, 먹거리 가게들이 끊임없이 나가고 들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반나절을 소요해도 좋은 슬로(slow)마을이다. 자투리 공원들 사이로 아직까지 '이전과 이후' 변모된 풍경이 골목 곳곳에 남아있어 느긋하게 걸을 일이다.

걷자, 22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수원 일번지 길' _3
행궁동 공방거리의 한 작은 골목
걷자, 22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수원 일번지 길' _2
로데오거리와 향교거리 풍경, 서민스러운 정겨운 풍경이 참 좋다

전통과 현대가 광장사이로 한곳에

행궁동 생태마을을 벗어나면 다시 조선후기 정조의 시대와 조우한다. 건축사적으로 뛰어난 조형미를 보이는 화령전에는 200여년의 세월을 굳건하게 견뎌낸 시간의 흔적이 담겨있다. 
본디 이곳은  융복에 전립을 쓴 정조대왕(1752~1800)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기 위해 한양 창덕궁을 떠나 현륭원으로 나서는 능행차 때 임금은, 익선관에 곤룡포 차림이 아닌 아버지가 즐겨 입던 융복차림을 함으로서 지극한 효성을 드러냈다. 

바로 이웃한 화성행궁은 정궁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행궁 중 최대의 규모(576칸)였고 위치와 품격 또한 드높은 문화유산이다. 궁궐의 형식인 이곳의 위엄은 신풍교를 지나 2층 누각 '신풍루'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 겹의 삼문을 지나 정당인 봉수당과 좌우로 펼쳐진 각각의 공간들, 그리고 후원인 미로한정까지 사철 다른 풍경을 보여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노후를 보내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되어 돌아본다면 그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올 테다. 

바로 앞 '수원아이파크미술관'도 곁들여 찾아가 보자. 광장이란 한 공간 안에서 전통과 현대가 함께 숨을 쉰다. 

인사동 부럽지 않은 공방거리 그리고 로데오거리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문화예술과 역사를 즐기셨다면 이제부턴 먹거리 탐닉에 들어갈 시간이다. 1990년대 말까지 수원최대 번화가였던 곳, 팔달문 로데오거리는 연중 인파로 들끓었다. 낮에는 패션을 주도하는 거리였다가, 밤이면 음식점과 유흥가가 밀집된 뒷골목을 찾은 사람들이 밤이 이슥하도록 흥청댔다. 

2000년대 상권이 신흥번화가로 빠져나가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다. 하지만 10여년도 넘게 꾸준하게, 자발적으로 노력한 덕을 서서히 보게 되는 것일까. 뼈를 깎는 아픔을 딛고 상인들은 봄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산으로 치장한 공방거리가 아닌 전통으로 무장한 가게들과 음식점, 찻집, 작은 갤러리 등 골목길을 되살리는 각양각색의 볼거리 즐길거리가 들어서면서 젊은이들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거리의 미술관들과 화성으로 가는 성곽길이 연결되는 지점이라 여행자의 선택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

걷자, 22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수원 일번지 길' _4
화성행궁(상단)과 성공회 수원교회(하단 왼쪽)와 향교 정문

향교거리에 인쇄업체들과 구제옷가게 즐비 

청춘을 대변하는 로데오거리를 지나면 바로 향교 거리로 들어간다. 보통 교동거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데 중동사거리에서 수원역으로 이어지는 옛길이다. 수원 토박이들이라면 다 아는 '인쇄거리'로 유명한데 일제강점기시절인 1918년 팔달구보건소 근처에 수원지역 최초의 인쇄소가 들어서면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수원역 옛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던 곳까지 인쇄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듯 자신의 상호를 내건 인쇄업체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경기도청과 수원세무서, 크고 작은 학원 등이 밀집된 지역이라는 특성도 한몫했을 터이다.

사실 이 거리는 매산초등학교 옆에 있는 향교와 10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성공회 수원교회, 근대 역사건축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수원시여성회관 등 명소로서의 볼거리도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40년쯤 된 막국수집이 있는가하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구제옷가게와 미술학원도 즐비하다. 저마다 독특한 오브제로 장착하고 홍대거리나 여타 유명한 거리를 방불케 한다. 그 색다른 즐거움의 여세는 수원역 로데오거리까지 이어진다. 거듭 단언하건데 수원의 일번지 길이다.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수원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안내해줘도 좋을 만한 길이다.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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