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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
2014-11-12 15:09:38최종 업데이트 : 2014-11-12 15:09:3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했던가. 특히나 가을이 떠나가는 이즈음 애면글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덧없이 무상하다고 느낄 터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리 말해주니.
그럼에도 다시 흩어졌다 모이는 것이 또한 자연이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닐 테다. 당나라 선승 임제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즉, 우리가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우리가 서있는 곳마다 진실하다고 했으니 주체적으로 살 일이다. 그래야 끝 마당에 아쉬움이 덜할 터이다.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1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1

가을이 떠나간다. 차가운 겨울을 맞닥트리기 전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자연을 만나볼 일이다. 수원 도심 외곽 사찰 용주사를 향해 떠난다. 
11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조선 22대 왕으로 등극한 정조대왕은 조선 최대의 명당 터로 지목한 수원부 읍치 현릉원(현, 융릉)으로 부친의 묘소를 이장했다. 그리고 사도세자를 위한 왕실의 원찰로서 용주사를 조성했다.

여느 사찰의 형식을 벗어난 이유다. 일주문(一柱門)대신 홍살문과 삼문(三門)이, 왕실의 여러 행사를 치르기 위한 공간으로 좌우 행랑이 들어섰다. 대웅보전과 지장전, 천보루 등 품격 있는 건물과 불화와 불상 등이 당대 최고의 화풍을 반영하며 사찰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늦가을에 찾은 용주사, 세월의 더께를 덜어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까. 정조의 효심이 담겨 있는 부모은중경 탑신 주변이 공사로 어지럽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절의 아름다움이 너른 품으로 사부대중을 맞아들인다. 전강선사 부도탑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군락과 은행나무, 조지훈의 승무 시비주변과 대웅보전 앞마당과 뒷마당, 고승들의 거처 소나무 군락지.... 늦가을 풍경이 여기저기 보인다. 만추를 접하는 이들이 한때나마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2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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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3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3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 어젯밤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 창 밖에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 구나

언젠가 아주 가까운 이와 마주했던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을 떠올린다. 당시 유리박스 안에 담겨있던 이 선시를 만나는 순간 목덜미가 싸늘할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깨달은 자만이 이처럼 멋진 선시가 터지는 것일까. 
시간만 허락한다면 오층석탑을 두고 탑돌이에 열중인 템플스테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몇날며칠을 지내고 싶어진다. 혹, 하룻밤 사이 깨달음을 얻은 우바이가 될 수 있다면...고즈넉한 산사의 가을밤을 호젓하게 보내고 싶어진다.

마음 어디선가 죽비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가람 한가운데 선다. 전각 기둥에 걸린 주련들이 그제야 들어온다. 
시야를 좁힌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어 일제강점기 사진과 그림엽서를 모으고 있는 함께 한 친구가 말한다. 1920년대 엽서에 나온 대웅보전과 지금의 풍경이 한참 다르다고. 
유심히 관찰하니 축대가 다르다. 아마도 후대에 내려오면서 위상을 고려해 높이를 위엄 있게 쌓은듯하다. 이제부터 성토대회라도 열겠다는 것인지 준비해온 엽서사진 이것저것을 선보인다. 관심 있게 살펴보니 곳곳에서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이 역시 역사다란 결론을 짓는다.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4
가을이 떠나간다, 다시 용주사에 가야겠다_4
 
아름다워라, 용주사의 늦가을. 
처처가 모두 작은 행복으로 빛을 발한다. 용주사의 자연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자태도 찬란한 태양처럼 빛난다. 모두가 날마다 이처럼 빛나는 하루였으면 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산다면 날마다 좋은 날일 터,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홍재루 현판 앞마당에서 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나뭇잎 하나가 내 어깨를 치고 낮은 곳으로 내려 앉는다. 순간 '할(喝)!'이란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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