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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평을 경영하라!" 정조대왕과 만석거 걷기
2016-10-11 17:59:20최종 업데이트 : 2016-10-11 17:59:2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축성이 시작된 1794년은 삼남지방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가뭄 피해가 극심했다. 이에 정조대왕은 화성 축성공사를 일시 중지하고 장안문 북쪽 지역에 황무지를 개간해 둔전을 조성하고 안정된 둔전을 경영하기 위해 수리사업도 진행했다. 대유평(大有坪)이란 둔전을 개발하고 1795년 봄에 만석거(萬石渠)란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만석거는 1795년 3월 1일 공사가 시작되어 5월 18일 완성하였다. 만석거의 크기는 둘레가 1,022보, 얕은 곳이 7척, 깊은 곳이 11척, 제방의 길이 725척, 밑의 두께가 52척, 위는 줄어들어 너비가 17척 남짓이다. 모두 포백척을 사용했다고 화성성역의궤는 기록하고 있다.

대유평을 경영하라! 정조대왕과 만석거 걷기_1
연꽃이 아름다운 만석거

정조 당시의 1보는 약 117.2cm, 1주척은 약 19.5cm 이므로 만석거의 둘레는 약 1,198m 정도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만석거 둘레길이 약 1.3km 이므로 규모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만석거는 둘레길 속에 갇힌 모습이지만 축조 당시의 제방 반대쪽은 우기와 건기에 따라 둘레가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석거 제방 북쪽 낭떠러지의 돌을 파서 물이 들어오는 입구를 만들어 물을 끌어내리는 길과 통하게 하여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했고 여의교(如意橋)란 나무다리를 놓았는데 다리의 너비를 방죽 등허리와 나란히 하여 가마길을 만들었다. 이 길은 왕이 다니는 길인 필로로 이용되었는데 제방의 너비는 약 7.9m로 한강에 놓였던 배다리의 폭인 24척(약 7.4m)과 비슷하다. 

대유평을 경영하라! 정조대왕과 만석거 걷기_2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만석공원

정조대왕은 지지대고개를 넘어와 괴목정교, 노송지대를 지나 만석거 여의교로 들어와 제방길을 지나 영화정에서 행차가 잠시 쉬었다 갔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20년(1796) 병진 1월 20일자 "현륭원에 배알하려고, 화성 교귀정을 지나 행궁에 이르러 밤을 지내다" 제목에 '장차 현륭원(顯隆園)에 배알하려고 어가가 화성(華城) 교귀정(交龜亭, 영화정)에 이르러 우의정 윤시동에게 이르기를, "관개(灌漑)하는 이익이 크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못을 파면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앞 들판에서 수확한 것이 이미 1천 곡(斛)이 되었다." 하고는, 인하여 정자[亭]를 '영화(迎華)'로, 야(野)를 '관길(觀吉)'로, 평(坪)을 '대유(大有)'로, 도랑[渠]을 '만석(萬石)'으로 각각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였다.'는 내용의 기록을 통해 만석거가 명명된 내력을 알 수 있다. 

1797년, 1798년에 발생한 가뭄으로 삼남지역은 피해가 컸지만 만석거 덕분에 대유평은 가뭄을 극복할 수 있었다. 대유평 에서는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의 식량이 풍족해졌고 수원화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만석거를 축조해 대유평 국영농장에서 농업혁명을 성공시킨 정조대왕은 1799년 수원화성 서쪽에 만석거보다 규모가 큰 축만제(祝萬堤)를 축조하고 축만제 아래 서둔이란 국영농장을 건설했다. 

대유평을 경영하라! 정조대왕과 만석거 걷기_3
영화정

둔전을 확대해 백성들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애민정신과 깊은 뜻은 조선후기 농업생산 기반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근대에 이르러 수원이 대한민국 농업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만석거 아래 대유평은 모두 주택가로 변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지만 축만제 아래 서둔은 여전히 풍년가가 울려 퍼지는 농사의 현장이며 200여 년 전을 추억하고 있다.

정조대왕은 수원화성 축성 직후 화성 춘8경, 추8경을 정하고 단원 김홍도에게 병풍으로 그리게 했는데, 만석거 주변 풍광이 3개나 포함되어 있어 만석거의 위상과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춘8경 중 대유평(大有坪)에서 농사하는 노래를 '대유농가(大有農歌)'라 했는데 둔전을 경영하고 성공시키는 게 대단히 중요했던 일임을 알 수 있다. 

대유평을 경영하라! 정조대왕과 만석거 걷기_4
정리의궤 성역도에 있는 만석거와 영화정 채색그림

연꽃 물가에 채색배 띄우는 것을 '하정범일(荷汀泛鷁)'이라 했는데 만석거에 배를 띄우고 아름다운 연꽃을 감상하는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추8경 중 만석거의 누른 구름을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 했는데 만석거로 인해 대유평에 풍년이 들어 풍성한 가을을 말하는 것이다.

만석거에 핀 아름다운 연꽃 감상하는 것을 수원8경의 하나인 북지상련(北池賞蓮)이라고 한다. 만석거는 수원화성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지(北池)라 불리기도 한다. 만석거를 감싸안 듯 만석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만석거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여름에는 많은 연꽃이 피어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만석거 제방길을 걸으며 수리시설의 중요성을 느껴보고 영화정에 앉아 아름다운 풍광을 즐겨 보시기를.

대유평, 만석거, 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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