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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무제의 경관, 광교산 창성사터도 올라보자
천하명당..고려 큰스님 진각국사 입적 고찰터
2017-03-09 12:23:32최종 업데이트 : 2017-03-09 12:23:3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2016년 12월 22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렸던 '고고학과 문헌을 통해 본 수원 창성사지의 역사적 가치'란 한신대학교 수원 창성사지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후 창성사지 답사를 고대하다가 주말을 이용해 답사를 다녀왔다. 
13번 버스종점에서 내려 광교산 등산로로 진입해 폭포식당을 지나자마자 개천을 건너 광교산으로 접어드는 길로 들어섰다. 새싹이 돋기 전 초봄 메마른 산하에 두껍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산행을 시작했다. 어디선가 멧돼지가 출몰할 것 같은 한적한 등산로를 오르는데 숨이 막힐 지경이다. 평소 평지의 답사만을 다니다 산행을 하니 힘에 겨웠다.

일망무제의 경관, 광교산 창성사터도 올라보자_1
광교산 창성사지 터에서 나온 유물 조각들

땀이 비 오듯 쏟아질 즈음 창성사지에 도착했다. 큰 바위 위에 마치 야외전시를 한 듯 기와 파편, 백자 파편 등의 유물이 널려 있어 폐사지라고는 하지만 유적지가 방치된 듯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한신대학교 박물관에서 창성사지 2차 발굴조사, 5단 시굴 조사를 한 이후 하늘색 비닐로 발굴터 전체를 덮어놓아 창성사지 터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창성사지의 전체적인 규모는 알 수 있었다.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는 광교산 비로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 사이의 계곡 최상단인 해발고도 약 320미터에 남서 방향으로 자리 잡아 일망무제의 경관이 펼쳐지는데 남쪽으로는 상광교동 일부와 백운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 파장동, 정자동 등 북수원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마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눈앞에 펼쳐진 백두대간 연봉들을 보는 것처럼 장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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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창성사지 터, 노송 두 그루가 지키고 있다

창성사지는 경사진 산을 깎아 평탄하게 조성하였기 때문에 5단의 고저차를 가지고 있다. 현장을 보니 1단과 2단 사이의 석축이 배가 부른 상태로 붕괴위험이 있어 보였다. 폐사지로 방치되면서 효과적인 배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창성사지의 핵심적인 공간이며 중심건물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단 구역은 면적이 약 1천600 제곱미터에 이른다.

창성사지 터에서 남동쪽으로 약 80미터 거리에는 진각국사 탑비 터가 있다. 현재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옆 길가에 있는 보물 제14호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가 있던 자리인데 1965년 현 위치로 옮겨졌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탑비 터에는 '보물 제22호 창성사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란 조선총독부가 세운 비석이 남아있어 원래 탑비 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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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창성사지 터, 진각국사 탑비가 있던 자리

진각국사 천희(眞覺國師 千熙, 1307-1382)는 화엄종 승려로 고려 공민왕 때 국사(國師)를 지내고 1382년에 창성사에서 입적한 사실이 비문에 적혀있다. 비는 높이 150cm, 폭 85cm 두께 13cm이고 1386년(우왕 12)에 세워졌다. 비는 장방형의 대석을 놓고 비신을 세운 후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비신의 일부는 마모가 심하고 부식되어 글씨를 쓴 사람은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지만 이색(1328-1396)이 비문을 짓고, 승려인 혜잠이 비문의 글자를 새긴 사실은 알 수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은 알 수 없지만 구양순 서체에 바탕을 두고 있어 굳세고 금석기가 있으며 투박해 보인다.

창성사지가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발굴된 유물을 통해서 볼 때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창성사지는 원주 법천사, 용인 서봉사, 여주 신륵사 등과 함께 조선 태종 7년(1407)에 전국 88개 자복사로 선정될 정도로 규모 및 위상이 상당히 높은 사찰이었지만 1872년 제작된 수원부지도와 1894년 경 편찬된 '기전영지' 제1책의 '수원읍지'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창성사가 19세기 후반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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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옆 길가에 있는 진각국사 탑비

일세를 풍미했던 창성사지는 폐사지가 되어 200살 이상 돼 보이는 기품 있고 잘생긴 노송 두 그루가 지키고 있는데 슬픈 역사를 지켜봤을 것 같다. 창성사지 터 좌우에는 출토된 석탑 부재와 건물의 기단석 등 석조유물이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우물 덮개로 활용된 석탑 부재까지 있어 창성사지의 옛 영화로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지만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시야가 탁 트인 광교산 경관을 보면 과연 이곳이 명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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