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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산길에서 추억의 사진을 찾다
수원의 팔색길 중 '지게길'을 걸어보니
2014-06-17 17:26:03최종 업데이트 : 2014-06-17 17:26:03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엄니, 나무 한짐 해오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자, 오라버니"
"가시내가 저녁 지어야지 이 저녁에 어딜 간다고."
"저녁상에 입맛 도는 봄나물 올릴게요! 오는 길에 우리 밭에서 호박이나 가지도 몇 개 따올까? 엄니가 해주는 호박, 나물 무침이 제일 맛있는데."
"가시내, 말이나 못해야지.... 해지기 전에 빨리 댕겨와라, 엄니가 쌀 안쳐 놓을게 늦지 않게."

연인들의 낭만적 데이트 코스 호반길

대문을 나서자 오후의 햇살이 봄날의 나뭇잎위에 물방울처럼 톡톡 내려와 스민다. 어머니의 크게 벌린 양팔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을 품에 안는 광교산 끝자락 광교 공원과 접해 있는 광교저수지에는 찰랑이는 햇살이 물결을 흔들고 있다. 그 물길을 따라 방죽위에 길게 놓여진 광교마루 산책길부터 지게길은 시작된다.

지난 2013년 수원시에서 시민들의 건강과 아름다운 정서를 지켜주고자 녹지 공간 확충 사업의 일환으로 친구와 연인, 가족들과 걷기에 딱 좋은 낭만적인 길, 총 135Km의 8색길을 조성하였다. 그중 2색길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어 광교 마을회관 용수 농원을 돌아 한철 약수터를 지나 파장시장으로 넘어가는 지게길이다. 
나무꾼들이 지게 지고 넘어다니던 길이라 하여 지게길로 불려지는 이 길은 친구들과 바구니 가득 봄나물을 뜯으며 설레는 꿈과 첫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좋은 길이다. 총 거리 7.1Km로 발길 닿는 곳마다 야생화가 피어 있어 새끼 손톱만한 풀꽃들을 찾아 꽃구경을 하며 걸어도 두시간 정도 소요된다.

방부목으로 만들어진 데크는 도로가 접한 쪽으로는 벚꽃 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길게 이어져 있어 벚꽃 흐드러진 봄날에는 무릉도원을 연상케한다. 다른 한쪽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 흐르고 있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구름다리를 걷는 것만 같다. 저수지 저 너머에는 수변 산책로가 물길을 따라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누구라도 다정한 친구처럼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를 것만 같다. 

광교마루 산책길에는 곳곳에 무대처럼 둥근 공간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고 멋스러운 정자도 있어 쉬어갈 수 있다. 화창한 휴일에는 예술가들의 '거리로 나온 예술'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한가로운 휴일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을 멋진 무대의 콘서트장으로 안내하여 멋진 공연을 선사하기도 한다.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와도 다정한 눈인사를 나눠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콧노래가 나올법한 여유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정겨운 산길에서 추억의 사진을 찾다 _2
주말이면 공연을 보거나 친구와 정자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다


야생화들의 웃음 소리 들리는 시냇가 옆 오솔길 

광교마루길을 지나 광교 쉼터에 이르면 구름다리가 있다. 구름다리 너머 한쪽으로는 수변 산책로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지게길을 넘어가는 야생화를 찾아볼수 있는 좁은 오솔길이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데크길로 정리 되어 있어 산새들과 함께 노래하며 걸을 수 있다. 좀더 가면 데크길은 뚝 끊기고 광교산자락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시냇물 옆으로 나무꾼이거나 나물캐는 아가씨들이 먼저 내어놓은 길이 이어진다. 애기똥풀 꽃이 시냇물 옆 비탈길에 흐드러지게 피어 봄바람이 옆구리를 간지를 때마다 까르르 웃어댄다. 애기똥풀 꽃 사이 사이 작은 야생화들도 보인다. 꽃범의 꼬리, 며느리 밥풀꽃, 은방울꽃, 제비꽃, 호랑매발톱 꽃, 제비동자꽃, 꽃창포, 분홍달맞이, 범부채, 할미꽃...... .

시냇물 옆 넓은 땅에서 나물을 캐는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아주머니, 나물이 많이 캤어요? 지금 캐는 것은 뭐예요?"하고 아는 척을 하였더니 "씀바귀여, 냉이도 좀 있고. 쑥은 천지에 깔렸구만. 지금 쑥개떡 해먹으면 맛있을 때지. 한동안 밥상에 몸에 좋은 나물 반찬들로 푸짐하겠구만. 한주먹 줄테니 해먹을텨?"하며 기분 좋게 웃어준다.

매미 소리 들리는 수루레미 마을

싸리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길을 지나면 수루레미라고 쓰여진 다리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수루레미 고개로 상광교에서 파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상광교동 새마을 회관 못미쳐 왼쪽에 있는 마을 옆으로 난 길인데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경사가 그리 크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도 넘을수 있는 고개이다. 수루레미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수레가 다니던 길이어서 그리 불렸다고도 하고 쓰르래미(매미)가 많이 울어서 그리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은 옛 농촌 마을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있다. 비닐 하우스에 심어놓은 갖가지 모종들도 보이고 멀리 한무리의 젖소들이 보인다. 젖소 농장 앞으로 젖소들이 먹을 푸른 풀들이 무릎높이 만큼이나 자라서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보여준다. 
젖소 농장을 굽어 지나면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넘나들던 꼬부랑 고개가 펼쳐진다. 손 닿는 곳마다 찔레꽃 나무 덩굴이 잡힌다. 찔레순을 벗겨 먹기는 지금이 딱 좋을 때다. 조심조심 가시를 피해 찔레순 끝가지를 꺽어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면 푸른 향이 화하고 입안에 번진다.

정겨운 산길에서 추억의 사진을 찾다 _3
꼬부랑 고개길 넘어가는 곳의 목장

한철 약수터 앞으로 펼쳐진 주말 농장

꼬부랑 언덕길을 조금은 거친 숨소리를 고르며 올라가면 고개 위에 세갈래의 길이 보인다. 한쪽으로는 광교산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길과 다른 한쪽은 광교산 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그 가운데로 지게길이 계속 이어진다. 가까운 곳에 한철 약수터가 있다고 안내판이 알려준다. 약수터를 향해 룰루랄라 걸음을 옮긴다. 멀지 않은 곳에 약수터가 보인다. 

파장동의 '전한철'이라는 사람이 옺나무골 사람들과 협조하여 이곳을 오가는 사람을 위해 만들었으니 다같이 깨끗한 약수 건강을 지키고 정성으로 깨끗이 관리하여 자손만대로 물려주자는 투박한 정이 안내비에 새겨져 있다. 물 한모금은 달게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여 놀수 있는 공터와 운동시설들이 보인다. 잠시 쉴수 있는 의자들도 곳곳에 있어 시집 한권 가져와 읽고 가면 몸과 마음이 모두 청량해질 듯 하다. 암세포까지 꼼짝 못하게 한다는 피톤치드가 이곳에 가장 많이 뿜어진다고 하니 벤치에 누워 맑은 하늘의 구름을 보며 깜빡 잠이 들어도 좋겠다.

공원 아래로는 넓게 주말 농장이 이어져 있다. 반듯하게 획을 그어 줄지어 심어져 있는 상추와 파, 고추, 마늘등이 참으로 예쁘다. 한두평 텃밭에서 온가족이 가을까지 먹을 수 있는 야채거리는 물론 김장 재료까지  충분히 수확할 수 있을 듯 싶다. 온가족이 나와 오후의 봄햇살 아래 밭을 일구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밥상 앞에 둘어앉은 애틋한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건강 토종 음식으로 발길을 잡는 맛집 거리

길게 이어진 비탈길 산자락 주말 농장을 지나면 항아리 화장실이 나온다. 전세계인이 감동하는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보여주는 예술적 외관이 예쁘고 깔끔한 화장실이다.
주변에는 식도락가들이 찾아오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보리밥, 파전 등을 비롯하여 토끼탕, 초당 두부, 연꽃잎밥 등 메뉴들도 토속적인 한국 음식들로 다양한다. 

친구들과 즐겨 찾던 칼국수집 감나무집도 보인다. 작고 허름한 집이기는 해도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던 정성스런 손맛이 살아있어서 즐겨찾던 곳이다. 십여년 전에 문전성시를 이루던 맛집이었건만 최고의 손맛을 자랑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지금은 손님이 뜸해졌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아는 척을 하였더니 남자 주인이 알아보고는 반가이 맞이한다.  
그간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처남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온가족들이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사는 일이 그렇게 아프기도 하면서 흘러가는 거지요. 어디 늘 좋은 일만 있겠어요. 그래도 옛날에 장모님 계실 때 손님들 몰려들어 맛있게 음식 먹고 행복해하던 얼굴들이 잊혀지지 않아 문 닫지 못하고 지키고 있어요. 이제는 추억을 지키며 밥벌이나 하는거지요."하며 씁쓸히 웃으며 문앞의 황매화에 물을 준다.

맛집들을 지나 내려오면 커다란 용광사라는 사찰이 보인다. 1998년 건립된 대한불교천태종 사찰로 철근 콘크리트와 전통 한식이 혼합되어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화려한 건축 양식으로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커다란 불교행사를 준비하는지 사찰내에는 화려한 연등들이 걸려있고 스님과 신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옛 향기를 담고 있는 광주이씨 월곡댁

파장 시장을 목전에 두고 지게길의 끝에는 중요 민속 자료 제 123호로 지정된 수원 광주이씨 월곡댁이 있다. 이 가옥은 조선 말기에 지어진 150년  가까이 지난 고택으로 뒤에는 낮은 산이 있고 주위로 나지막한 산이 둘러져 있으며 앞에는 광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어 풍수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 그 집안이 파장동 일대의 대부분의 땅 소유주였다고 하니 가문의 번영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할아버지 때부터 5대를 이어 살며 그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70년간 살고 있는 이 순흥(69세, 광주이씨 월곡댁의 3대)씨는 당시 넓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가을이면 온동네 잔치를 열어 마을 주민들을 푸짐히 먹이던 부모님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며 옛추억을 이야기한다.

ㄱ자형의 안채가 남서향으로 놓이고 그 앞으로 ㄴ자형으로 연결된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비켜앉아 안마당을 감싸고 있다. 지붕은 초가로 되어있으나 부재의 치목이나 창호의 구성등을 볼 때 매우 정성들여 지은 건물로서 1888년 3월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안채, 사랑채, 헛간채, 광 등으로 구성되어 농가의 쓰임새에 맞게 지어져 있어 조선말의 살림집의 특색을 살필 수 있는 귀한 문화재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소녀처럼 환희 웃으며 대문을 활짝 열고 맞이하는 이순흥씨의 집 뒤뜰에는 목단꽃이 동산을 이루며 탐스럽게 피어 있다. 돌과 황토가 섞여 만들어내는 정겹고 단단한 담을 따라 갖가지 꽃들이 옛이야기를 하며 피어있다.

그 집 대문 앞에 서면 굴뚝 위로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저녁밥 지어놓고 나의 어머니가 살아돌아와 환희 웃으며 맞아줄 것만 같다.

"엄니, 저 왔어요. 한바구니 가득 캐어온 봄나물 얼릉 무쳐올릴테니 그만 방에 들어가 다리 펴고 기다리셔요. 오라버니도 지게 내려 놓고 얼릉 씻고 들어가요. 참으로 살랑살랑 콧노래 나오는 봄날 저녁이예요, 그쵸?"

정겨운 산길에서 추억의 사진을 찾다 _1
지게길이 시작되는 수변데크길

지게길

떠나보내기 아쉬운 봄날이 있거든 지게길로 가보라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이
싹을 내미는 봄나물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바구니 가득 잃어버린 봄빛 추억과 꿈을 담으며

장작 패는 오래비의 땀내음 풀피리 소리
아직도 산길 따라 울려 퍼지고

산비탈길 묵정밭을 일구는 여인네의 손길 아래
따사로운 가족들의 웃음소리 울리는 지게길로 가보라

어머니 군불 때는 아궁이 앞에서 아직도 환하게 웃고 있을 터이니
옛향기 그리운 날에는 신록 우거진 오솔길로
매미 소리 까치 소리 울리는 지게길로 가보라
키 작은 야생화들 까르르 웃음 소리 울리는 지게길로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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