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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
'씨없는 수박 개발학자'로 알려진 우장춘박사 묘소를 아시나요
2015-04-22 09:42:26최종 업데이트 : 2015-04-22 09:42:26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며칠전 친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노세이 카페지기가 새로 가입한 시인 이수(카페명)씨와 나까지 포함해 넷이서 점심을 같이 하자는데 바쁜 일이 없으면 참석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수씨는 수원시 실버 인력뱅크 노인 일자리사업단 실버기자단과 수원사랑 이야기에서 2년을 같이 일을 했기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작년 10월 수원사랑 이야기 사업이 종료되고 올해는 그 사업단이 폐지돼 작년에 함께 일한 동료들이 헤어진 후 서로 뿔뿔이 흩어져 소식들을 모르고 지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 네티즌 칼럼을  썼는데 그걸 읽고 댓글을 단 것을 보고 아노세이 카페에 가입 한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함께 점심을 하자는 전갈이 왔으니 나는 반가운 마음에 쾌히 그러자고 했다. 21일 아침 화서 전철역 앞에서 12시에 만나자는 문자가 다시왔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카메라 볼펜 수첩을 챙겨 가지고 조금 일찍 출발했다. 화서역에 11시 반쯤 도착했다. 길거리 행상을 하는 노인이 틀어놓은 핸드폰 크기의 노래방 기기에서 흥겨운 옛 노래 가락이 흘러 나온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한분 한분 모인다. 우리 일행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2시가 넘었다. 바로 헤어지기가 섭섭하니 야외에 나가 구경이라도 하자고 했다.
서호 호수길을 따라 걷는데 어제 비에도 벗꽃이 다 지지않고 우리를 반기고 있다. 우리가 걷고있는 축만제방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서호 호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농촌 진흥청 벼 재배 시험장이 있다.

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1
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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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노는 물닭을 찍기위해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대기하고 있다

호수를 한바퀴 돌고 집에 오려고 사진 몇컷을 찍는데 서호공원 입구에서 일행이 불러 따라 들어갔다. 3평 남짓한 사무실이다.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커피까지 대접을 한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앉았다.
노인은 벽에 있는 서호의 옛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귀로는 설명을 들으랴 수첩에 기록하랴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럴때 속기를 배워 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호에 관련된 정조시대부터 박대통령 시대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장춘 박사가 우리나라 농업에 기여한 업적까지 설명 해준다. 설명이 끝나고 무엇하는 분인지 궁금해 존함을 물었다.
이재봉 선생이라고한다. 지금 무슨일을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문화유산 해설사라고 한다. 나는 운좋게 서호에관한 취재원을 제대로 만나 좋은 자료를 얻은 것이다. 

서호 호수는 정조23년(1799년) 내탕금 3만량을 들여 만든 인공 호수로 서쪽에 위치하여 서호(西湖)라 불렀으며 호수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어놓아 서호 낙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수있게 했다. 축만제와 둔전은 조선후기 농업생산기반의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진흥청 벼 재배 시험장은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통일벼 시험 재배에 성공하여 전국 농촌에 통일벼를 확산시켰고 450명의 농촌 지도자들의 새마을 교육을 실시했다. 진흥청 시험장은 우리나라 1차산업의 진원지로 통일쌀 증산 정책으로 보리고개를 면하게 했고 경제발전의 진원지 이기도 하다. 또 진흥청 뒤에 있는 여기산에는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분으로 알려진 우장춘 박사의 묘가 있다고 한다.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우장춘 박사는 민비 시해에 가담해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조선의 자객에 의해 살해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나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6년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에 입학했다. 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 시험장에 취직했고 1936년 5월 '종의합성(種의合性)'이란 논문으로 도쿄 제국대학으로부터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 박사는 1950년 3월8일 한국으로 귀국 한국농업 연구소장. 농사원 원예시험장. 중앙원예 기술원장을 지냈으며 과학자로써 육종사업과 후진양성에 전념해 왔다.
업적으로는 1.바이러스에 취약한 강원도 감자개발 2.일본 재래종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 한국환경에 맞는 배추개발 3.제주도 감귤개발 4.폐튜니아 홑꽃을 화초용 접꽃으로 종자개량. 씨없는 수박개발 등의 업적을 남겼다.

우 박사는 1959년 8월10일 61세로 서울에서 별세했다. 묘지는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구 농촌진흥청 내 여기산에 있다. 별세 3일전 대한민국 문화 훈포장을 받기도 했다. 우장춘 박사는 이제야 "조국이 나를 받아 들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조선을 배신한 아버지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것이 평생 마음에 짐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장춘 박사 묘소는 진흥청이 있을때는 들어 갈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관리자가 없으니 들어갈수 있다고 해설사가 귀뜸을 해준다. 4 시가 넘어 두분은 가고 카페지기와 둘이서 우장춘 박사 묘지를 가보기로 했다.
진흥청 건물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줄을 띠어 놓았다. 나는 우박사 묘의 사진찰영을 위해 불가피 했다. 들어가보니 텅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3
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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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4
조국 농업발전에 일생 바친 우장춘박사_4

진흥청 건물 뒤로 가보니 산으로가는 길이 있다. 철망으로 된 출입문이 다행히 열쇠를 채우지 안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한참을 가다보니 길이 끊겨 가시 덤풀 때문에 더이상 올라갈수가 없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온것 같아서 되 돌아 나왔다. 진흥청 주변을 이리저리 한참을 맴돌다가 도로변에서 산에 오르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 철망으로 된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겨있다. 

옆으로 들어갈수 있는 공간이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수원 여기산 선사 유적지라는 입간판이 있다. 넓이 2m 정도의 도로 양쪽으로 배수로까지 만들어 잘 정비된 것으로 보아 우박사 묘소로 가는 길인 것 같다.
길을 따라 30여m쯤 올라가니 대리석으로 계단을 만들었고 그위에 직사각형의 석조로된 무덤 같은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대리석에 '우장춘 박사묘'라고 써있다.

우장춘 박사의 묘비는 전통적인 묘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무덤은 관 모양의 석조물이고 비는 석조물 위에 우장춘 박사의 상반신을 타원형 동판으로 조각을 했다.
비문에는 '1898년 4월8일 망명정객 우범선(禹範善)공의 맏아들로 일본에서 출생 1959년 8월10일 서울에서 별세'라고 새겨있다. 이 사진 한장을 찍기위해 얼마를 헤맸는지 모른다. 

이렇게 고생하며 여기까지와 사진을 찍은 이유는 현장감 있는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서다. 글로만 쓰는 기사는 사건 사고를 독자들에게 전달만 해주는 생명이 없는 기사다.
하지만 사진기사는 독자들을 사건사고 현장을 직접 보는듯한 현장감을 느낄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는 발로 쓴다고들 말한다. 오늘 나와 고생하며 취재에 동행해준 카페지기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을수가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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