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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 여기가 화성과 수원, 오산의 고향이었나
2015-05-09 10:55:50최종 업데이트 : 2015-05-09 10:55:5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세월의 무상함이. 여기가 화성, 오산, 수원의 옛 사람들의 터전이었나?  화성과 오산, 수원 3개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수원 고읍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수원 고읍성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이어질까?

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 여기가 화성과 수원, 오산의 고향이었나_1
경기도 기념물 93호

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 여기가 화성과 수원, 오산의 고향이었나_2
수원 고읍성 안내문

화성(華城)과 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은?

수원시에 위치한 화성(華城)은 현존하는 성곽과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화성은 당대 정치적 이해관계로 성역이 이뤄졌으며, 성곽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관광지의 면모를 갖추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렇지만 화성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성시에 위치한 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은 역사 속으로 녹아들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져 가고 있다.

화성(華城)의 역사는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화성은 조선 후기 문예 부흥의 주역이었던 정조 임금이 정치적 개혁과 어버이에 대한 깊은 효심으로 양주 배봉산에 있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고읍성이 있던 경기도 송산동 화산 일원 융릉으로 옮겨 이장 했다. 이에 따라 읍성에 거주하는 백성을 계획도시로 꾸며진 지금의 수원 화성 안과 인근지역으로 이주시킴으로 인하여 수원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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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고읍성

수원 고읍성(水原古邑城)! 여기가 화성과 수원, 오산의 고향이었나_4
수원 고읍성 상부

허물진 화성과 오산, 수원의 고향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하물면 사람은 어떠하리! 자연의 일부분인 사람이 한 곳에서 몇 년 만 터 잡고 살게 되면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주변의 다양한 사물에 관심을 갖고 적응하여 새롭게 태어난 제 2고향으로 친숙함을 느끼면 살아간다.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을 수원에서 생활해 왔다. 긴 세월 수원에 대한 이야기를 화성과 더불어 듣고 나눴다. 당연히 화성을 빼놓고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맺을 수 없듯이 시간만 나면 화성의 곳곳을 찾았다. 그렇지만 화성이 성역(城役) 되면서 허물어져 버린 수원 고읍성에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이는 수원의 200여년 이전의 고향이었던 수원 고읍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탓에서 오는 무지였으리라 자책해 본다. 과연 나만이 가졌던 무지였을까?

화성, 오산, 수원 3개시에는 옛 사람들을 지키며 보호했던 성이 30여개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국시대 축성된 화성 서신면의 당성과 백제성으로 향남면 요리 길성리 토성 등 많은 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들 성을 둘러보기로 하고, 그 첫 번째로 3개시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 고읍성을 찾았다.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 산 2-2번지에 있는 수원고읍성을 찾아 수원역에서 융건릉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융건릉이 2 정류장 남았다는 안내 방송이 버스 안을 울리는 순간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본 듯한 수원 고읍성 표지판이었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경기도 지정 기념물 제93호 수원 고읍성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 앞에 도착했다.

표지판 뒤로는 흙으로 된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언덕은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표지판 뒤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한 눈에 보아도 토성임을 알아볼 수 있는 흙길이다. 토성 표지판 왼쪽은 배양초등학교로 가는 도로에 포장이 되어 있으며, 오른쪽은 개인 소유로 식목원이다. 또한 수원 고읍성이 있는 땅도 개인 소유인지 국가 소유인지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없는 것이 아쉽다.

오솔길을 따라 성위로 올라가니 위 부분은 2~3m의 넓이로 산책길이 성을 따라 이어져 있다. 길을 따라 500여m에 이르자 성의 흔적은 간곳없고 개인 주택과 더 넓은 밭이 나온다. 이것이 수원 고읍성의 전부란 말인가?

파종을 위해 곱게 갈아놓은 밭두렁을 타고 건너편 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숲 풀이 우거진 산에 도착하자 밭 위 언저리에 철조망이 둘러쳐 있다. 철조망에는 융건릉 관리소장 명의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한다.'라고 적혀 있다.

화성과 오산 수원지역을 관장하는 군현(행정관청)있던 수원 고읍성이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되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수원 고읍성, 토성,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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