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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에서 세상을 읽다
산은 칸막이 없는 마음쉼터
2020-10-19 12:06:17최종 업데이트 : 2020-10-21 08:49:46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거리가 있어야 뿌리도 넉넉히 내리면서 거목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거리가 있어야 뿌리도 넉넉히 내리면서 거목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칠보산은 원래 팔보산이었다.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 수탉, 호랑이, 절, 장사, 금이 있어 팔보산이라 불렀는데, 그중 하나가 없어져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높이는 238.8m로 비교적 낮지만, 수원시와 화성시, 안산시에 넓게 걸쳐 있다. 광교산이 형님 같은 산이라면, 칠보산은 막냇동생 정도 된다.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호매실동과 금곡동을 그리고 당수동까지 넉넉한 가슴으로 끌어안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이름처럼 보물 같은 산이다.

코로나19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듯하다.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는 시대에 산행은 비교적 자유롭다. 더욱 칠보산은 그리 높지 않아서 가족과 함께 오를 수 있다. 건강도 챙기고, 마음의 위로도 받는다.

산에 오르면서 나무를 본다.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 서로가 그늘을 만들어 잘 자라지 못한다. 거리가 있어야 뿌리도 넉넉히 내리면서 거목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사랑하는 마음도 싹 트고 상처도 주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도 '간'이라는 사이의 개념이 들어있다. 흔히 사이가 좋다는 말을 한다. 사이가 있어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가족이라도 개인은 참 다르다. 다르므로 아름답다. 사이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나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쩌면 이전부터 해오던 우리들의 관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난 산은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다. 칠보산은 동네 뒷산이어서 조용하다. 이 조용함이 좋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말 못 하는 사람이 없다. 저마다 잘났다고 떠든다. 때로는 침묵으로 대화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침묵은 복잡한 현실을 한 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침묵과 대화하다 보면 성숙한 내면이 만들어진다. 침묵의 숲을 걷다 보면 맑은 영혼을 발견하고, 농익은 삶의 진실에 다다른다. 말이 많은 것은 욕심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산속의 고요함에도 배움이 있다. 침묵이 때로는 더 큰 함성으로 들리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험한 길에는 등산로(테크)를 만들어놓았다. 이것을 만드느냐 땀을 흘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다가온다.

험한 길에는 등산로(테크)를 만들어놓았다. 이것을 만드느냐 땀을 흘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다가온다.


칠보산이 비록 몸집은 작지만 우습게 볼 게 아니다. 흙길로 얌전히 오를 수 있기도 하지만, 적당히 오르면 제법 큰 바위가 길을 막는다. 묵직한 바위가 누워서 등산객에게 숨을 몰아쉬게 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숨이 거칠고, 땀을 흘려야 한다. 여기를 오르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쉬운 것은 없다. 어려움을 이겨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여기 바위를 넘어야 정상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산행으로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마음도 여기서 든다. 산에서 이웃집 아저씨를 오늘도 만났다. "이사 오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 나이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산이 있는 게 제일이죠. 특히 칠보산은 적당히 높아서 편해요. 사람도 많지 않고."라고 웃으면 말을 한다. 


묵직한 바위가 누워서 등산객에게 숨을 몰아쉬게 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숨이 거칠고, 땀을 흘려야 한다. 세상에서 쉬운 것은 없다. 어려움을 이겨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묵직한 바위가 누워서 등산객에게 숨을 몰아쉬게 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숨이 거칠고, 땀을 흘려야 한다. 세상에서 쉬운 것은 없다. 어려움을 이겨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바위를 넘으니 평탄한 능선이 기다린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 탓에 나무뿌리가 보인다. 나무들이 아프겠다는 생각을 담아본다. 뿌리를 땅에 두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나무를 보면, 인간 존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가 땅에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듯이 인간도 현실에서 일상을 영위한다. 나무가 무거운 몸짓을 하늘로 향하고 있듯, 인간도 이상은 늘 저 높은 곳을 향해 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다. 나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준다. 우리는 나무뿌리에 의지해서 산에 오르고, 짐승들은 나무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산다. 나무를 보면 희생, 헌신, 봉사, 배려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산에 먼저 오른 사람이 쉬고 있다. 음악을 큰 소리로 듣고 있다. 음악은 혼자 들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음악 소리로 산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새들이 놀라지 않을까. 이쯤에서 쉬고 싶었지만,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있는 모습에 계속해서 산행을 이어 간다.

칠보산은 작지만 오르는 코스가 여덟 개나 있다. 자연스럽게 길이 난 곳도 있지만, 험한 길에는 등산로(테크)를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가파른 길에 길을 만드느냐 고생깨나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땀을 흘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산행을 즐기는 것이다. 사유지를 허락해서 길을 만들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도 다가온다. 혼자 올라도 좋지만, 이런 길이 마련되어 있어서 가족과 함께 둘이 오르면 더 좋다.

산은 계곡을 만들고, 그곳으로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참 깨끗한 물인데도 가두지 않고 모두 흘려보내고 있다. 나무는 열매를 만들어 땅으로 떨어낸다. 봄부터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얻은 값진 열매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다. 다람쥐 등에 양보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가지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진다는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나무와 물처럼 다 내어주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남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고마운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광고 현수막이 보인다. 산도 자연 유산이다. 당연히 우리가 잘 쓰고 후손에게 물려 주워야 한다.

광고 현수막이 보인다. 산도 자연 유산이다. 당연히 우리가 잘 쓰고 후손에게 물려 주워야 한다.



산은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친다. 정상에 올랐으면 만족하고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것도 올라간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우리의 삶도 영원히 정상에서 머무를 수 없다. 정상은 곧 성공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안주하면 무너진다. 정상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새로움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다.

산을 내려오니 광고 현수막이 보인다. 도로에 불법 광고물은 수시로 단속을 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나 보다. 오랫동안 붙어 있다. 산도 자연 유산이다. 당연히 우리가 잘 쓰고 후손에게 물려 주워야 한다. 식물과 동물들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고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산은 영원함이 느껴진다. 풍상을 견디며 쉼 없이 생명을 움직이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늠름한 자태를 만들어낸다. 세월의 흐름에 오히려 깊이를 더하는 모습이 인간과 다르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세속의 명리를 따르지 않고도 충만함으로 버티는 산을 뒤로하고 내려온다. 삶의 지혜는 밖에 있지 않다. 우리 마음에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청빈한 산처럼 담백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속에 산 높이만 한 희망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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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 자연유산,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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