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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처럼 숨어서 성벽을 감시하라"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40-치성의 역할
2010-05-20 16:57:15최종 업데이트 : 2010-05-20 16:57: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성벽 중간에 돌출시켜 쌓은 치성

꿩처럼 숨어서 성벽을 감시하라 _1
기본 치성

수원화성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시설 가운데 치성(雉城)을 무시할 수 없다. 
치성은 성벽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건설된다. 성벽을 중간중간 밖으로 돌출시켜서 군사를 주둔시키면, 돌출된 곳에서 성벽의 양쪽을 모두 바라보게 되고 성벽 밑에 기어 들어온 적군을 제압하기에 편리하다. 
성을 잘 지키기 위해서 치성은, 땅의 생김새대로 성을 쌓다가 저절로 성벽이 돌출되는 곳에는 굳이 설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평지의 경우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시설물이다.

만약 적이 쳐들어와서 성벽에 달라붙게 되면 성안에서는 화살이나 총탄을 쏠 수도 없게 되고, 상대편의 갈고리나 몽둥이가 이미 성의 밑바탕을 허물게 될 것이다. 성벽 바로 밑에 적군이 기어 들어와서 갈고리들을 성벽 틈에 꽂은 다음 일제히 잡아당기면 무너질 위험에 빠진다. 치성이 없으면 성벽 바로 밑은 바라볼 수가 없고 공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꿩의 습성을 응용

치성의 치(雉)자는 꿩을 뜻한다. 꿩이라는 새가 제 몸은 숨기고 밖을 잘 엿본다고 해서 성벽에서 돌출시킨 성을 치성이라 했다. 꿩은 땅위를 걷기 때문에 몸이 길고 날씬한데, 발과 발가락은 발달되었지만 날개가 둥글고 짧아서 멀리 날지 못한다. 사람이나 해를 끼칠만한 동물을 만나면 날쌔게 달아나다가 위급할 경우에는 나뭇잎을 물고 누워서 찾을 수가 없게 만든다. 또 밤이면 나무 위에 앉아서 천적의 침해를 피하는 버릇이 있고, 지진에 예민해서 날개소리와 울음소리를 크게 내어 예고해 주기도 한다. 치성과 걸맞은 꿩의 습관이다.
 
정사년(1797) 정월 29일 동장대에서 정조 임금은,
"우리나라 성제는 고루하여 서울이나 외방을 막론하고 원래 치, 첩의 제도가 없다. 오직 돌아가신 정승 김종서가 쌓은 경성(鏡城)의 성 모양이 대략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그 형상이 홀과 같아서 내려다보기는 편하지만 그래도 치, 첩의 제도만은 못하였다. 대개 우리나라 성의 제도는 전체가 두루 둥글고 모양이 모나지 않으므로 모든 타나 첩마다 사람이 둘러서서 지켜야만 겨우 적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이번에 새로 쌓은 화성에는 비로소 치의 제도를 사용하여 보수(步數)를 계산하여 정하고 따로 모서리지게 만들어서 성체를 둘러싸게 하였다. 매 치마다 비록 몇 사람만 세워두어도 좌우로 살펴보기에 편리하고, 아래에서 보면 첩을 지키는 사람이 많고 적은지를 분별할 수가 없다."
라고 하여 치성의 제도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한다.

치성의 화려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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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의 변신

화성의 치는 8곳이지만 실제로는 16곳이 된다. <성서城書>에,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舖)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이는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주어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런 포루(舖樓)가 5곳이고, 가운데를 비우고 벽을 친 것을 돈(墩)이라고 하는데 돈이 2곳(서북공심돈, 남공심돈), 위에 노수(弩手)를 매복시키는 곳을 노대라고 하는데 노대가 1곳(동북노대) 해서 8개의 치성이 된다. 위에 집을 얹지 않고 여장만 만든 것이 치성 본래의 제도인데 이런 치성이 8곳이다. 

실제로 16곳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치성은 이보다 많다. 
대포를 쏘는 포루(砲樓)가 5곳이 있는데 모두 치성처럼 돌출시켰고, 봉돈과 용도도 엄밀한 의미에서 치성이기 때문이다. 
화성의 치성은 치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성에 포루(舖樓)를 얹고, 공심돈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노대로 위장하고, 포루(砲樓)로 만들어 대포를 감추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변화와 복합성이 화성의 장점이다. 
하나의 시설물을 여러 기능으로 변화시킨 것이 당대의 문화적인 능력의 소산이었다.

꿩처럼 숨어서 성벽을 감시하라 _3
봉돈도 치성의 역할을 했다


대포집, 완벽한 요새

포루(砲樓)의 제도에 대해서 서애 유성룡 선생은,
"가만히 앉아서 깊이 생각한지 오랜 동안에 문득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었는데, 이것은 성 밖에 마땅히 형세를 따라서 따로 뾰족한 성[凸城]을 치성의 제도처럼 쌓고 그 속을 텅 비워서 사람을 수용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전면과 좌우에 대포 구멍을 뚫어내어 그 속으로부터 대포를 쏘게 만든다. 이렇게 된다면 다른 성가퀴에는 비록 지키는 군사가 없더라도 다만 수십 명으로 하여금 포루(砲樓)를 지키게 하여도 적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이는 실로 성을 지키는 묘법으로서 그 제도는 비록 치성을 본떴다 하더라도 그 공효는 치성보다도 훨씬 나을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렇게 서애 선생의 혜안은 치성과 포루(砲樓)와 다락집까지 일체화시켰다. 
그리고 200여 년 뒤의 화성에서는 한 술 더 떠서 벽돌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여 견고성을 더 확보하였다. 또한 서애 선생이 제시한 천 보의 거리를 바탕으로 하여 적절히 응용, 4600보의 화성에 다섯 개의 포루(砲樓)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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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이면서 대포집인 시설 포루

치성과 포루(舖樓)에는 모두 현안을 1개나 2개씩 내었는데 포루(砲樓)에는 만들지 않았다. 
벽돌로 만들어 튼튼하고 대포 구멍을 내느라 그랬을 것이다. 대신에 포루의 아래 돌에는 작은 구멍을 한 포루에 8개씩 뚫었다. 포루 속으로 들이친 빗물 등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기능도 있겠지만, 대포를 발사할 때 발생하는 연기를 빨리 없애기 위한 공기구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애 선생은 200여 년 후 정조의 화성 축성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적어 놓았다.
"뒷날에 만약 원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버리지 말고 이런 제도를 들어 마련한다면, 그것이 적을 막는 방법으로서 이로운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염상균/화성연구회 사무처장

수원, 염상균, 수원화성, 치성, 서애 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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