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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의 성격- '파초도'와 '국화도' 그림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17
2009-12-02 16:47:00최종 업데이트 : 2009-12-02 16:47:0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성격과 취미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건설한 정조임금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학자였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으며 국왕이 된 다음에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태도도 반듯했으며 자신의 소유물인 도서와 기물 등도 자로 잰 듯이 정연하게 정리하였다. 
이렇게 빈틈없이 자신을 단속한 배경에는 11세 때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도 한몫을 한다. 매정하게 자식을 죽인 할아버지 영조가 두려웠던 것이다.

세자시강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의 일화가 전해온다.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들이 정조를 가르쳤으니 지금으로 치면 영재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것도 단 한 사람을 위한 학교이므로 그 교육 수준과 효과가 어땠을까?
관례대로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이 교육을 담당했는데, 첫 시간 공부는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외워 보이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호된 질책이 뒤따르는 법인데, 영특한 정조는 일부러 한 두 글자를 틀리게 암송하고 이를 지적하지 못하면 거꾸로 교수관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정조는 자신의 성품이 잘 참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아첨하거나 굴종하는 모습을 보면 반드시 통박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원망을 많이 샀고, 즉위 초에는 이런 성격에 대해 혹독한 비방을 받았다. 이를 이겨낸다는 것 또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자제하기 어려운 것이 성냄[怒]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때에는 그 일을 제쳐두고 성깔을 가라앉힌 다음 처리하였다. 이렇게 불같은 성질을 누그러뜨리니 큰 잘못은 면하게 되더라고 경험을 토로하였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 한 가지 반찬에 젓가락이 가면 종종 그밖에 다른 반찬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백성과 국가에 관한 일에는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으니 자신이 쓰는 생활 도구에도 관심이 없었고,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바둑이나 잡기에 눈 돌릴 여가가 없었다. 오로지 정사를 보는 틈틈이 책상 위의 책을 펼쳐보는 것만이 즐거울 뿐이라고 했으니, 독서가 취미라는 말이다.

정조임금의 성격- '파초도'와 '국화도' 그림 _1
파초도

파초도에서 읽어내는 고향생각
취미가 독서였다고 해서 책벌레만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정조의 그림 두 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파초도와 국화도가 그것인데 파초는 국내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귀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파초는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식물이었다. 
정조는 수원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무덤이 옮겨온 곳이고 자신도 죽으면 아버지 곁에 묻히겠다고 공언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하였다. 
이 파초도를 언제 그렸는지 확실하지 않다. 만약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긴 이후에 그린 그림이라면 수원을 생각하고 그린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곧은 줄기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듯하고 이파리 셋은 크기도 각기 다르고 먹의 농담도 서로 다르다. 
그 중 왼쪽의 큰 잎은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하겠는데 한 잎에서도 농도를 달리해서 그렸다. 특히 바람에 나부끼는 듯이 처리한 끝자락의 모습은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기교이다. 
화면 전체를 잘 나누어서 바위며 이끼며 작은 풀을 적당히 그렸고 파초의 줄기에 붙은 잎자루 묘사도 실제인양 뛰어나다.

정조임금의 성격- '파초도'와 '국화도' 그림 _2
국화도

국화도엔 메뚜기도 한 마리
국화도는 또 어떠한가? 매난국죽 사군자 가운데 국화도를 그린 사람은 많지 않다. 매화나 난초, 대나무 등은 그 품성이 고매하고 상징성이 높아서 즐겨 그린 사람이 많은데 비해 국화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정조임금의 국화도가 더 돋보인다.

벼랑에 위태롭게 매달린 바위엔 이끼가 끼었고 주변에는 풀도 많이 나게 그려서 자연스런 모습을 깔았다. 
국화는 바위 뒤에서 자라난 것으로 보이는데 언뜻 보면 마치 바위를 뚫고 자라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래로 쳐진 국화와 위로 솟아오른 국화가지가 주인공이어서 진하게 표현하였는데 중간에는 가지 없이 엷은 꽃만 그려서 어색함을 달랜다. 아무래도 위로 뻗은 국화가 시선을 사로잡으므로 으뜸 주인공이라고 하겠다. 
그 가지를 보면 바람에도 꺾일 듯 가늘게 묘사하였는데 꽃은 가분수처럼 아주 풍성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어린 꽃송이도 셋을 그리고 메뚜기도 한 마리 그려서 생동감을 심었으며 가을이라는 계절 감각도 느끼게 해준다.

수원추팔경 가운데 한정품국
화성행궁 후원에는 미로한정(未老閑亭)을 지었다. 
육각형의 멋들어진 정자에 오르면 행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멋진 정자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것이 한정품국(閑亭品菊)이다. 

정조임금의 성격- '파초도'와 '국화도' 그림 _3
미로한정

그 가을 풍경을 느껴보려고 오른 미로한정 주변에는 국화가 없었다. 대신 철쭉이 줄지어 섰다.
정조임금의 국화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장이다. 내년 가을엔 국화 화분 하나라도 가져다 놓아야 할 것이다.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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