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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허기, 두려움 속에 울부짖다 죽은 사도세자
[연재소설 224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8-10 09:58:44최종 업데이트 : 2010-08-10 09:58:44 작성자 :   e수원뉴스
더위와 허기, 두려움 속에 울부짖다 죽은 사도세자_1
그림/김호영


  정성왕후는 바로 자신의 소생도 아닌 사도세자를 자애와 정성으로 끔찍이 보살펴주었던 왕후였다. 
  물론 노론들의 갖은 음해공작 속에서 언제나 사도세자의 편에 서서 보호했다. 그런 정성황후가 돌아가시자 사도세자의 슬픔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클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는 정성황후 국장 때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했고, 그 피눈물은 상복에 묻었다. 더욱 커지는 노론들 세력들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사도세자는 이 피 묻은 상복을 곁에 두고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니까 그 피 묻은 상복은 영조를 저주하기 위한 상복이 아니라, 정성왕후의 장례 때 입었던 상복이었던 것이다.
  이런 진실을 덮고 그들이 왜곡으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 때문이었다.   

  대리청정을 시작하자마자 사도세자는 영조를 옭아맨 노론의 신임의리의 부당함을 간파하고는 노론의 전횡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사도세자는 소론이나 남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금했다. 사도세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까지 영조가 노론의 공세에 밀려 벌인 완론 탕평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취해 버렸다. 즉, 사도세자는 강력한 임금이 당색이 뚜렷한 소신파들을 영도하는 준론 탕평을 구상했던 것이다.

  노론에게 이런 사도세자는 자신들의 미래와 목숨을 앗아갈 존재였으며,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정적이었다. 그래서였다. 그들이 혈삼을 빌미 삼아 사도세자를 모함한 것은. 

  오뉴월 찌는 듯한 더위에 뒤주에 갇혀, 엿새 동안이나 더위와 허기, 두려움 속에 울부짖다 죽은 사도세자는 자신의 죄업이 아니었다. 사도세자를 죽인 사람은 아버지 영조였다. 

  그런데, 그런 영조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금등을 남겼다니, 노론은 분노했다. 
  영조는 그들에게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임금이었다.
  즉위 초부터 경종독살설에 시달리다 이인좌의 난까지 겪은 영조를 보필한 것이 누구였단 말인가. 그 신축년(辛丑年)과 임인년(壬寅年)에 탄압을 무릅쓰고 영조를 옹호하여 오늘의 임금으로 만들어준 것이 누구였단 말인가.
  영조는 마땅히 죽어서도 '신임의리'를 지켜야 했다. 

  그날, 왕은 눈물을 흘렸다. 신하들도 눈물을 흘렸다. 심환지도 김종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물이 담고 있는 저마다의 색깔들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환지는 물론 김종수를 비롯한 노론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향한 협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더는 말하지 말라는, 더는 임금의 행보를 가로 막지 말라는.
  그들은 더는 나아갈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임금은 선대왕이 남긴 '금등'의 유산으로 노론의 목을 밟고 서서 화성 건립이라는 엄청난 일을 추진해나갔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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