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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은 임금만의 강력한 군영이었다
[연재소설 225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8-11 10:07:27최종 업데이트 : 2010-08-11 10:07:27 작성자 :   e수원뉴스
장용영은 임금만의 강력한 군영이었다_1
그림/김호영


  '화성, 장용영'
  낮게 나오는 심환지의 그 말에는 지난날의 분노가, 임금에게 금등지사에 옭아매져 임금의 행보를 막지 못한 지난 세월에 대한 부화가 들어있었다. 

  임금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금등의 일을 꺼내 노론의 목소리를 죽인 임금은 곧바로 채제공에게 화성을 쌓는 규약(계획서)을 만들어 바치라 명했다. 정조가 장용청을 장용영이라는 하나의 군영으로 재편한 것은 그 뒤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것은 노론에게 이제까지 정조가 추진해온 장용위의 확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군영의 탄생을 의미했고, 임금만의 강력한 군영의 탄생을 의미했다. 정조의 군영은 어느 날 갑자기 노론들을 향해 무기를 겨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금등지사의 일로 죄인의 입장에 선 노론일지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반대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땅한 명분은 없었다.  그들은 처음 정조가 장용위를 창설할 때 들었던 '불필요성'과 '군비의 낭비'를 다시 명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조의 반격은 지체가 없었다.
  "내가 장용영을 설치한 것은 직위(호위기구)를 중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생각지 않던 사변에 대비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있어서 병신년(즉위해) 초부터 누누이 생각하고 계획하였다."

  말하자면 장용영으로 그대들을 공격할 뜻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에서 어제의 약속은 바뀐 상황과 바뀐 명분 앞에서 헌신짝이 되는 법이다. 그들은 다시 비용낭비를 초래하는 장용영 창설을 반대하였다. 정조는 마치 그들의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장용영을 설치한 이후 잘 모르는 자들은 혹 '하나의 군문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는 것은 결국 경비 소모에 귀결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 정조는 그들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안을 내 놓았다. 

  "짐이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폐단의 근원을 깊이 생각해서 가슴속에 계획을 세웠는데 10년이나 지난 끝에 완성되었다. 왕실의 세입은 수입을 헤아려 겨우 지출을 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어공(御供:이금에게 바치는 것)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부터 스스로 줄이고 없애 조금씩 자금을 고생해서 마련했다. 이는 오직 왕실과 정부가 한 몸인바 백성을 위해 고생을 줄여 주려는 고심과 지극한 뜻에서 나왔다."

  장용영 창설에 들어갈 비용을 왕실 비용을 아껴 조성한 내탕금으로 마련해 놓았다는 임금 앞에서 그들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정조는 장용영을 서울의 장용영과 화성의 장용외영 두 개의 군으로 나누었다. 이중 화성의 장용외영은 아버지 사도제사의 이장 능인 융능을 호위한다는 명분이었는데 전초, 좌우초, 중초, 후초 등 다섯 개의 초를 둔 서울의 장용영과 같이 이곳에도 5초의 대규모 군영으로 만들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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