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무예도보통지'...조선은 물론 중국.일본무예 총망라
[연재소설 208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7-19 09:52:11최종 업데이트 : 2010-07-19 09:52:11 작성자 :   e수원뉴스
'무예도보통지'...조선은 물론 중국.일본무예 총망라_1
그림/김호영


  "생각해 보거라. 너희들이 해냈던 일을, 무예도보통지.... 무예24기... 나는 그날이 어젠 듯 생생하구나. 어젠 듯 아름답구나......."
  스승은 어떤 옛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인가. 스물네가지 무예들의 세를 모두 완성한 뒤 시연했던 그때를 떠올리는가? 아니면 백동수가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를 들고 묘적사에 들어오던 그날을 떠올리는가? 그도 아니면 완성된 화성 안에서 임금을 앞에 두고 무예24기를 시연하던 장용위 군사들의 위용을 생각하는가.

  아니다. 스승은 어쩌면 이 모두를 떠올리고 있을지 몰랐다. 회상에는 순서도 없고, 시간의 제약 또한 없다. 회상들은 서로 맞춤한 곳에 섞여든다. 

  이태의 마음에 먼저 떠오른 것은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것이었다. 
  마상 격구까지 스물네 가지의 무예들의 세들이 완성되어갈 무렵 묘적사에 온 백동수는 임금의 명을 알렸었다.
  정조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사무국을 장용영 안에 설치하도록 명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주해를 붙여 모든 잘잘못까지 논단을 붙이는 실무적인 일은 검서관(檢書官) 이덕무, 박제가에게 맡겼고, 묘적사에서 이루어진 각 무예의 자세한 세에 대한 부분은 백동수가 책임지도록 하였다. 백동수는 책에 실릴 세세한 세들은 장용위로 복귀한 교관들이 시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이 완성된 것은 다음해인 경술년(庚戌年),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14년이 되는 4월이었다.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는 그야말로 당시 조선에 존재하는 무예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예까지 총망라한 것이었다. 

  이 통지에는 실린 각 무예들의 연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했다.
  곤봉(棍棒), 등패(藤牌), 낭선(狼筅), 장창(長槍), 당파(鎲鈀), 쌍수도(雙手刀) 등 여섯 가지 기예는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에 나왔다는 것을 명기했고, 선조 임금 때 훈련도감 낭청 한교(韓嶠)에게 명하여 우리 나라에 출정한 중국 장수들에게 두루 물어 찬보(撰譜)를 만들어 출간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했으며, 영조 임금 기사년에 장헌 세자(莊獻世子)가 모든 정사를 대리하던 중 기묘년에 명하여 죽장창(竹長鎗), 기창(旗鎗), 예도(銳刀), 왜검(倭劒), 교전(交戰), 월협도(月挾刀), 쌍검(雙劒), 제독검(提督劒), 본국검(本國劒), 권법(拳法), 편(鞭), 곤(棍) 등 12가지 기예를 더 넣어 도해(圖解)로 엮어 새로 <신보(新譜)>를 만들었다는 것도 밝혔다.  

  이외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쌍검(馬上雙劒),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를 등 6가지 기예는 정조의 의중으로 정리하여 넣었다는 것 또한 기록하였다. 

  통지의 차례는 열성조가 군문을 설치하고 편찬한 병서(兵書)와 궁중 후원에서 시험을 거친 '연경월위(年經月緯)' 등을 널리 상고하여 사항에 따라 순차로 배열한 뒤에 '병기총서(兵技摠敍)'라는 명칭을 붙여 첫머리에 싣고, 다음에는 척계광(戚繼光)과 모원의(茅元儀)의 약전(略傳)인 '척모사실(戚茅事實)'을 싣고, 다음은 한교(韓嶠)가 편찬한 '기예질의(技藝質疑)'를 실었다. 

글/이기담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