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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촌은 살아 숨 쉬는 조선의 심장과 같은 곳
[연재소설 212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7-23 10:28:11최종 업데이트 : 2010-07-23 10:28:11 작성자 :   e수원뉴스

 중촌은 살아 숨 쉬는 조선의 심장과 같은 곳  _1
그림/김호영


  "니가 안 도와줘도 돼. 강희 실력 몰라서 그러냐?"
  "야, 넌 말을 뭐 그렇게 하냐? 두 놈이 달려들 수도 있고, 네 놈이 달려들 수도 있잖아."
  강희가 끼어들었다.
  "고마워, 슬해 오라버니."
  말하면서 이태에게 눈을 흘기는데, 그 눈길이 은근했다. 주슬해가 얼른 강희의 말을 받았다.
  "거 봐 짜샤~"
  "아유, 암튼 두 사형은 늘 티격태격!"

  강희와 함께 무예를 수련하는 여무사 체였다.
  체의 말대로 그들이 한양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티격태격 소소한 장난들은 계속됐다. 길은 멀었고, 힘은 넘쳤으니 무료함을 정(靜)으로 견디기는 어려웠다. 

  봄날 한양거리는 더 활기찼다. 흥인문에 들어선 그들은 어디를 갈까, 설왕설래 잠시 말들이 오고갔지만 청선방을 지나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하였다.   

  조선의 벼슬아치는 물론 내노라하는 양반들이 모여 사는 북촌(北村)은 구경할 것보다 번거로움이 많은 곳이었다. 양반들이나 하급 공무원들이 사는 남산 기슭의 남촌(南村)은 아이들의 마음을 끌만한 구경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들어선 중촌(中村)은 달랐다. 서리와 한양에서 산다하는 중인(中人)들이 사는 이곳은 그들에게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중촌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조선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 
  먼저 왜인과 중국인들의 말을 통역해주는 중인, 병을 고쳐주는 의원, 글을 써주는 필기사,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 책을 펴내는 중인들은 경복궁 앞에 살았다.(현재의 정부 종합 청사와 세종 문화회관 서쪽으로 종로구 당주동, 적선동, 내자동, 내수동, 사직동) 또 광교에서 장교를 이르는 지역은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다. 
  다동 남쪽에는 부유한 역관과 의원이 살아 중인들의 거주지 중에서도 부촌이었다. 또 각 군영의 군인들은 훈련도감과 훈련원이 있던 (서울운동장 야구장)도성 동남쪽과 왕십리에 살았다. 

  종로는 조선이 건국할 때부터 시전의 중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현(현재 종로4가)과 운종가(현재 종각), 그리고 칠패(현재 남대문 서쪽 봉래동)는 한양의 대표 세 시전이었다.

  또 백정은 지금의 혜화동 명륜동에, 신발을 반드는 갓바치는 지금의 동숭동 종로 5가 6가 충신동에, 잡다한 물건을 만드는 자들은 돈의동에, 그리고 대궐에서 잡다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잡역부는 내자동 내수동에, 나라 행사에 동원되는 나례군과 악기를 다루는 악인은 사직동에 살았다. 

   이태를 비롯한 그들은 흥화문에서 갓바치들이 모여 사는 명륜동으로 빠졌다가 다시 운종가를 향해 길을 잡았다.
  "야, 여기는 어디냐?"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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