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하였다
[연재소설 220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8-04 09:48:05최종 업데이트 : 2010-08-04 09:48:05 작성자 :   e수원뉴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하였다_1
그림/김호영


수원에 대한 정조의 배려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수원 민호(民戶)들이 이제 이사할 때를 당하였으니 그들을 염려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중한 죄수나 가벼운 죄수를 막론하고 모두 석방하고 고을을 옮길 때까지는 잡아 가두지 말라. 그 중에 사형수는 즉시 지방관으로 하여금 죄목을 뽑아 기록해 단자로 감영(監營)에 보고하게 하고, 보고된 뒤에는 감사가 의견을 구체적으로 붙여 장계로 아뢰게 하라. 본 고을 백성으로서 어떤 일로 인해 귀양 간 자도 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모두 귀양 간 곳의 감사로 하여금 놓아 보내게 하라. 그리고 이 뜻을 백성들에게 알아듣도록 일러 주라."

  이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천장을 계기로 수원을 키우겠다는 정조의 명백한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심환지는 알지 못했다. 임금의 숨은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임금이 그리고 있는 이후의 정국이 어떤 것인지.

  '임금이 남인의 영수 채제공을 좌의정으로 앉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임금이 채제공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수상, 영의정을 삼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노론들은 알고 있었다. 80년 만에 탄생한 남인의 영수 채제공의 등장이 가져올 정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때,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하였다. 정조가 채제공을 어필(御筆)로 특별히 임명하고 그 어필을 용정에 싣고 북 치고 피리 부는 무리를 앞세워 그의 집으로 가서 전하라 명했을 때, 입직승지 조윤대와 홍인호는 임금의 그 임명 전교를 되돌렸다. 임금의 명을 거역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합문에 나가 입대를 청하며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정조는 파직으로 맞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홍문관 교리 신대윤이 입대 청했다. 정조는 그를 체차시켰다. 이번에는 삭직된 도승지 심풍지가 다른 승지들 거느리고 승정원으로 가서 연명 상소를 했다. 

  정조는 상소를 불태웠다. 정조는 같은 문제 상소는 논죄할 것이라 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왕의 명을 집행해야 할 이조판서 오재순이 어명의 집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정치에서 명분은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것, 이때 노론들이 명분으로 삼은 것은 채제공이 왕의 즉위 초에 발생한 이덕사(李德師)등의 사도세자 복수 주창 상소에 동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노론은 이기지 못하였다.
  심환지는 그때의 실패가 종내는 채제공이 자신들을 향해 감히 '천토(天討)'를 주장하는 망발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일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죽은 채제공을 향해 맨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어졌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