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보았던 이덕무
[연재소설 199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7-06 10:07:09최종 업데이트 : 2010-07-06 10:07:09 작성자 :   e수원뉴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보았던 이덕무_1
그림/김호영


 이덕무 또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어려서부터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많은 독서량으로 유명했다.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다 보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독서량은 남의 추종을 불허했다. 

  백탑파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이들 백탑파 중 뱍제가, 유득공, 이서구, 이덕무가 펴낸 사가시집(四家詩集) '건연집(巾衍集)'이었다. 이 건연집은 청나라에까지 전해져서 이른바 사가시인(四家詩人)이라는 별칭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곳에 이런 서얼들뿐만이 아니라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부친 이원은 영의정까지 추증 받은 명가 후손인 이서구며, 조부가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사대부 후손인 박지원 같은 양반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환지가 보고 받은 내용에는 이서구가 이덕무보다 열네 살이 어리고, 유득공보다 일곱 살, 박제가보다 다섯 살이나 나이가 어림에도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낸다고 하였다. 박제가 같은 경우에는 한 번 이곳에 오면 한 달여나 머무르며 지낸다고 하니, 그들의 모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날로 곤궁해지는 백성들과 나라 재정에 대한 나름의 대안까지도 모색한다고는 소식이었다. 
  대안에는 당연히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노론에 대한 비판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벼슬길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서얼들이 하는 짓이라 여길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 서얼에 대해 정조가 해온 정책들이었다. 

  정조는 등극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서류소통절목(庶類疏通節目)'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서얼들의 벼슬길 진출의 길을 텄다. 
  그동안 서얼에 대한 관직 서용 규정은 문무 2품 이상의 양첩의 자손은 정3품까지, 천첩 자손은 정5품까지, 6품 이상의 양첩 자손은 정4품, 천첩 자손은 정6품에 오를 수 있으며, 7품 이하 관직이 없는 사람까지는 양첩의 자손은 정5품, 천첩자손은 정7품이 오를 수 있었다. 또 양첩자의 천첩 자손은 정 8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조는 '서류서통절목'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서얼이 호조, 형조, 공조의 문관 참상(정3품-6품)까지 오를 수 있게 하였다. 또 정3품 목사와 오위장, 종3품 부사와 우후에도 오를 수 있게 길을 열었다. 
  이는 서얼들도 정3품까지는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조는 이 규칙을 상례와 영원한 규칙인 항규(恒規)로 만들어 반포했다.

  더구나 정조는 규장각을 만들어 서얼들을 중용했다. 규장각은 겉으로는 역대 선황들의 장서와 초상인 어진을 보관하는 기구라고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정조의 개혁의 핵심 관청이었다. 이 규장각 검서관에 정조는 서얼들을 대거 등용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이 그들이었다. 

글/이기담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