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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주도면밀한 능청스러움
[연재소설 172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5-28 15:15:25최종 업데이트 : 2010-05-28 15:15:25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조의 주도면밀한 능청스러움_1
그림/김호영


  그런데 정조는
  "조정에서 특별히 상정(常情)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였다"며 덮어버렸다. 처벌 대신 보호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만큼 군권을 장악한 구선복 일가의 권력은 막강했다.
  구선복은 병조판서와 형조판서는 물론 어영대장, 금위대장, 훈련대장, 총융사 등 조선의 대부분 군영의 수장을 역임한 조선 군(軍)의 원로 장수로 조선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현직 훈련대장이었다. 구명겸은 그런 구선복의 조카였다. 게다가 구명겸도 좌포도대장을 지낸 군의 실세였다. 

  구선복의 가문 또한 무신 명가(名家)였다. 구선복 부친인 구성필(具聖弼)은 병마절도사를 역임했고, 구선복의 종형 구선행도 훈련대장과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그 아들 구현겸은 통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노론들처럼 임금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원수인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은 구선복을 중용했다. 

  심환지는 정조가 어쩔 수 없이 그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을 비롯한 노론들처럼 버릴 수 없는 계륵 같은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야 왕권은 유지될 수 있었을 터이니. 그것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비(中批;특별인사권)를 행사하면서까지 그를 병조판서에 특배하고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 품계까지 준 이유였을 것이다.

  대신 정조는 구선복을 한 자리에 오래 앉히지 않는 것으로 그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려 노력했다.
  이 역모 사건은 그해 4월 이율과 문양해를 능지처참하고 양형은 심문 도중 죽고, 홍복영은 그가 재물을 대어 지은 지리산 하동 문양해의 거처로 내려 보내져 사형당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심환지가 열린 직숙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임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장용위를 만들었다!'

  심환지는 시선을 들어 임금의 시신이 있는 환경전을 보았다. 이미 승하한 임금인데, 그는 왠지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이 한여름에. 새삼 정조의 주도면밀한 능청스러움에 치가 떨려왔다. 

  '그래 그것이 시작이었어.'
  돌이켜보면 묘적사와 달리 장용위 창설을 위한 움직임은 있어왔다.
  정조는 이미 몇 년 전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바꾼 기념으로 특별과거를 실시해 무려 2천명의 군사를 뽑아 훈련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때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들이 우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정조에게서는 다른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런데 이율의 역모가 있은 후는 달랐다.
  정조는 즉각 호위기구 정비에 나섰다. 정조는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서월랑(西月廊)에 주둔하고 있던 무예출신 무사들을 승차하여 새로운 호위기구인 장용위를 창설해버렸다.
  서월랑에 주둔하던 군사들은 원래 훈련도감 내 별기군(別技軍) 중에서 뽑은 무예가 출중한 군사들이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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