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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들은 즉각 정순왕후의 속뜻을 간파했다
[연재소설 173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5-31 11:13:18최종 업데이트 : 2010-05-31 11:13:18 작성자 :   e수원뉴스

노론들은 즉각 정순왕후의 속뜻을 간파했다_1
그림/김호영


 새로 창설된 장용위 군사들의 숫자는 50명이었다. 정조는 숙종 11년(1685)에 무예별감 출신 30명을 훈련도감 3개 번과 교차시킨 선례를 들어 반대 노론들의 불만을 막았다. 정조는 이렇게 만들어진 장용위 군사들로 자신의 호위를 맡겼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불과 1년 후에 일어난 생각지 않은 일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때도 심환지는 그것이 장용영이란 엄청난 군대로 확대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일만 연달아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심환지는 환경전에 준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그 일을 곰곰이 되짚었다. 

  이율 홍복영 역모사건이 있었던 다음해의 일이었다. 일의 시작은 정순왕후가 내린 교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아녀자가 조정의 정사에 간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는 때를 당하여 성상이 위태롭고 나라가 위험한 것을 눈으로 보고도....."

  이렇게 시작된 정순왕후의 교지는 정조의 혈육 중 홀로 남은 은언군 이인을 향해 있었다.
  이인은 사도세자가 숙빈 임씨에게서 난 아들로 정조에게는 이복동생이었고, 정순왕후에게는 손자였다. 그럼에도 정순왕후는 의빈성씨와 문효세자의 죽음에 마치 은언군이 깊이 간여된 것처럼 밝혔다.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들은 즉각 정순왕후의 속뜻을 간파했다. 

  '은언군 이인을 죽여라.'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들이 노론들의 핵심 거두인 정순왕후의 명을 거역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정조는 작년 구명겸이 역모에 가담한 것을 알고도 덮어두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군주였다. 그들은 즉각 정순왕후의 명을 받들어 은언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노론은
  "상계군 담은 이미 죽었지만 화근이 그대로 있으므로 관작을 삭탈해 족보에서 빼버리고 은언군 이인과 그 가족을 외딴 섬에 안치해야 한다."며 집요하게 임금에 상소를 올렸다.
  증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순왕후도 노론도 물러나지 않았다. 정순왕후는 음식도, 약도 먹지 않으며 정조를 압박했고, 노론들은 줄기찬 상소로 정조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일이 터졌다. 

  정순왕후의 교지가 내린 지 닷새째 되던 날에 상계군 이담의 외할아버지 송낙휴(宋樂休)가 고변을 할 것이 있다면 임금을 찾은 것이다.
  그의 고변은 이러하였다.

  "담이 살았을 때 '김 정승이 살면 나도 살 것이고 김 정승이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구이겸이 황해병사로 있을 때 후한 선물을 바치고 편지에 자신을 소인이라고 지칭한 것을 일찍이 목격했습니다. 담은 평소에 병이 없었는데 김 정승에 대해 말한 며칠 후 갑자기 죽었으니 의심스럽습니다."
  김정승은 영의정과 영중추부사에 오른 김상철(金尙喆)이었다. 그러니까 홍국영이 추대하려했던  상계군과 구이겸이 내통을 했다는 말이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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