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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엔 높고 낮은 벽이 존재하는가
[연재소설 154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5-04 10:33:23최종 업데이트 : 2010-05-04 10:33:23 작성자 :   e수원뉴스
왜 세상엔 높고 낮은 벽이 존재하는가_1
그림/김호영


  '운명'

  이태는 이 단어 외에 자신과 강희와의 관계를 설명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한다.  
  운명이란 단어가 갖는 부자유한 의미, 무책임의 어의를 그라고 모를 리 없었다.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비난 또한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것 잘 알았다. 그럼에도 지금 이태는 강희에게 향하던 자신의 마음이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자신을 향해 왔던 강희의 마음 또한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주슬해 또한 그럴 것이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묻는다면 말할 수 없었다. 강희 또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운명의 그림자는 자취도 없이 오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이 땅 위에 온 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온갖 생물들을 향하는 마음들이 어떻게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랑 또한 어떻게 서로에게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가끔 이태는 알 수 없는 의문들에 휩싸이곤 했다. 
  '어이하여 나는 고아인가?' '어이하여 나의 부모는 나를 버렸는가?' '어이하여 나는 스승 현의를 만났는가.' '어이하여 나는 중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이하여 세상에는 높고 낮음의 벽이 존재하는가.......'

  흔적 없는 삶은 한없는 공허함 속에 묶어버린다. 뿌리 없는 삶은 공중을 부유하는 단명의 운명을 지닌 것처럼 불안에 휩싸이게 한다. 메워지지 않는 불안과 고통을 공유한 자들에게는 동질적인 사람에게 유독 약한 법이다. 아픔에 대한 연민은 다른 감정보다 강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꼼꼼히 '현의와의 약속을 어긴' 시점을 찾기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묘적사에 들어오고 묘적사의 건물들이 다 지어질 때까지만 해도 강희에게 향하는 이태의 마음은 가족의 '동생'이었다. 
  가끔 이태를 따르는 강희를 향해 심술을 부리긴 했지만 주슬해의 행동 또한 그러하였다. 적어도 그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이란 어리석어서 공기처럼 드러나지 않는 원인들을 잘 알지 못한다. 허공의 공기처럼, 바람처럼 흐르던 것들이 단단한 혹부리가 되어 두드러질 때, 혹은 칼처럼 제 몸을 벼려 형체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눈치를 챈다.
  그날 있었던 그 일 또한 그러하였을 것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봄날이었고, 현의가 묘적사를 짓고 들어온 새 식구들에게 본격적인 무술수련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날이었다. 그날은 일 년 동안 현의 밑에서 무예를 배운 제자들의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람은 묘적사를 회오리치듯 불어댔다. 한바탕 세찬 비가 쏟아질듯 하늘은 짙은 회색빛으로 낮게 내려와 있었다. 봄의 계절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승복저고리 속을 파고들어 맨 살갗에 달려들었다. 

 승복바지가 돼지오줌보처럼 부풀어 올라 펄럭였다. 
 백봉사에서부터 묘적산으로 이어지는 바람은 묘적사안에서 회오리치며 뿌리 없이 흩어져 있는 것들을 불어 날렸다. 바람은 흉흉하게까지 느껴졌다. 

 왠지 닥칠 불길한 일에 대한 전운인 것만 같아 이태는 괜히 거림직해졌다. 그래서였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청소하며 나서는 길에 앞에 있는 현의를 향해 그렇게 말한 것은.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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