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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만의 무예 기틀을 마련하자"
[연재소설 131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4-01 10:18:36최종 업데이트 : 2010-04-01 10:18:36 작성자 :   e수원뉴스
조선만의 무예 기틀을 마련하자_1
그림/김호영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겠는지요? 무예가 아무리 하나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수만 가지의 상황에 맞는 무예는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렇지."
  임금이 맞장구를 쳤다.
  "허니, 스님께서는 어서 대답을 하셔야 합니다."

  백동수가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지나간 질문을 다시 끄집어 앞에 놓았다. 현의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임금 앞에 말하였다.
  "신이 몽매한 마음을 더듬어 짐작하건데, 한 가지에서 시작됐으나 수만 가지가 될 상황들을 대비할 세들을 다듬으라는 것으로 여겨지옵니다."
  "그것이 짐의 마음이로다!"

  정조는 자신의 짐작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릇 유학을 추구하는 선비이든 지극한 무예(武藝)를 추구하는 무인(武人)이든 높은 경지는 같을 것이다. 단 하나의 경지를 아는 자, 그 자는 그 경지를 아는 자였다.  

  정조는 본격적으로 그들에게 계획을 지시했다.
  "훈련도감, 금위영, 용호영, 어영청 같은 군영들 모두 '무예신보'의 18기를 익히고 있지만 군영마다 무예의 명칭과 기법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몇 년 전 무예의 명칭을 통일하긴 하였으나, 기법의 차이는 해결하지 못했다."

  훈련도감(訓鍊都監)은 수도의 수비를 맡아보던 군영이고, 금위영(禁衛營)은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중앙에 설치되었던 군영(軍營)이며, 용호영(龍虎營)은 조선시대 궁궐숙위(宿衛)와 호종(扈從)을 맡은 군영이다. 또 어영청(御營廳)은 3군문(三軍門)의 하나인 군영이었다.    

  그러니까 정조의 말은 명칭과 더불어 기법까지 통일한 조선만의 무예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새롭게 펴낼 무예서는 전체를 밝히고, 체제의 기준을 세우고, 얻고 잃음도 맺고 끊는 내용이 들어가게 될 것이며 전 군영에 보급되어 군사들에게 창검 기예를 가르치는 교범서로 활용되도록 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허나,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그들은 모두 다시 임금 앞에 부복하며 명을 받들었다.
  얼마가 걸릴 지 알 수 또한 없을 것이다. 자료를 수합하고, 그 자료들을 토대로 통지를 발간하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세들을 조선인들의 몸에 맞게 다듬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정조는 생각했다. 임금이 현의에게 자신의 생각을 물었다. 

  "소신 또한 그럴 것이라 여겨지옵니다."
  현의가 대답했다.
  "야뇌. 그대가 가교 역할을 해 주거라."
  "예, 전하."
  "염려스러운 것은."
  임금이 말을 끊었다. 그들 모두는 임금의 뒷말이 무엇일지 짐작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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