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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은 깊은 밤에 찾아왔다
[연재소설 126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3-25 10:20:47최종 업데이트 : 2010-03-25 10:20:47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조임금은 깊은 밤에 찾아왔다_1
그림/김호영


임금은 깊은 밤에 찾아왔다.
현의는 묘적사를 떠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백동수가 아이들에게 한양에 대한 바람을 넣던 그때부터. 어이하여 임금의 잠행을 미리 말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지만 현의는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나름의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일 것이므로. 다가올 일이 알아 대비할 것이 아니라면 올 일은 올 것이다. 서두르는 것보다 느긋한 기다림이 순리였다. 

  아이들의 취침은 평소보다 더뎠다. 하루 동안 겪은 많은 감정과 신선한 충격들의 홍수 속에서 감당해야 했던 고단함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였다. 백동수는 아이들이 잠이 든 후, 현의에게 드디어 말을 꺼내놓았다.
  "성상께서 납실 것입니다."  현의는 어이하여 그 말을 지금 꺼내는가 묻지 않았다. 

  임금은 백동수의 말대로 아이들이 잠든 이후, 깊은 밤 해시(亥時:밤11-1시)에 찾아왔다. 평범한 양반들의 차림인 미복의 차림으로, 7년 전 자신을 찾았던 그때의 그 차림으로.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임금은 위엄이 높아졌고, 진중해졌다. 임금이 물었다.
  "잘 있었는가?"
  심상한 임금의 물음 앞에 현의는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었다.
  "고맙구나."
  임금도 신하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백동수와 이덕무가 자신들이 본 묘적사의 일을 보고했다.
  "나무와 풀에 묻혀 터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조금만 다듬는다면 사찰의 위용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정조가 옥음을 내어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한가. 술이나 몇 잔 하고 해도 늦지 않을 걸."  정조가 현의에게 술을 내리며 농을 했다.
  "또 부처를 모시는 중이니 술잔을 받지 못하겠다 하는 것은 아니겠지?"
  현의가 예를 갖추어 술잔을 받으며 말했다.
  "소승이 중이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으신지요, 전하."
  "하하하..... 그러한가? 정히 그러한가? 하하하......."

  그것은 7년 전 정조의 청을 거절하면서 들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논리를 반대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현의의 말이 담고 있는 의중을 짐작했다.
  백동수와 이덕무가 임금을 따라 웃었다. 

  정조는 연거푸 다섯 잔의 술을 현의에게 내렸다. 현의는 연거푸 임금이 내린 술을 받아마셨다. 정조가 이번에는 백동수와 이덕무에게 연거푸 열 잔의 술을 내렸고, 다시 현의에게 여섯 잔의 술을 내렸다. 취기가 오른 이덕무의 얼굴은 홍당무로 변했다. 임금이 이덕무의 얼굴을 보다, 백동수의 얼굴을 보다, 현의의 얼굴을 보았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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