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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몸 우러러 의지할 데가 없다
[연재소설 88회] 1800년, 華城/월~금 연재
2010-02-01 14:03:35최종 업데이트 : 2010-02-01 14:03:35 작성자 :   e수원뉴스

 "그건.......아닐 것이다."
  강희는 생각지 않은 대답에 왕후를 보았다. 그는 왕후 또한 임금의 죽음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고 여겼다. 임금의 죽음에는 용서할 수 없는 간계가 개입된 것이라고 여긴다고 믿었다. 설사 말하는 왕후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고 해도.
  "마마......."
  "지금은.......국상 중이니라."
 왕후는 새로운 증거 앞에 독기를 품을 품성이 되지 못했다. 먼저 상처받고 먼저 슬픔 속에 잠겨 아파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왕후는 왕자를 낳지 못했다. 
 여기에 좌참찬까지 오른 아버지 김시묵(金時默)은 세상을 뜬 지 오래였다. 1790년(정조 14) 수빈(綏嬪) 박씨의 아들을 왕세자로 삼았다고는 하나 권력에서는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었다.

 처음 지아비 정조의 승하를 안 뒤 불러 들었던 김조순도 이제는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사람이 아닌, 대비의 사람이었다. 
 정조가 승하한 지 엿새째 되는 날, 대비는 순조의 즉위와 동시에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효의왕후는 순조가 즉위와 함께 내린 수렴청정 반교문을 생각했다.     

 소자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외람되이 높은 저위를 이어받았으나 아직 무작(無勺:13세 때 익히는 음악과 춤)의 나이를 넘지 못했다. 이 한 몸 우러러 의지할 데가 없다......마침 전대(前代)에 새로 즉위한 어린 임금은 대비가 수렴하는 아름다운 법규가 있다.....

 반교문에서 언급한 '전교' 예는 송나라 철종(哲宗)과 조선 성종의 일을 들었다. 이는 송나라 철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섭정을 한 것과 성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어린 성종을 대신 해서 수렴청정을 한 전례를 든 것이다. 

 역사적으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왕이 성인이 되는 동안 국정을 대리로 처리하던 수렴청정에 대한 예는 많았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에서의 수렴청정은 고구려 태조왕(6대왕 서기 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에 오른 태조의 당시 나이는 7세. 이에 태후(太后)가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신라에서도 법흥왕이 죽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7세로 제24대 왕으로 즉위하자 법흥왕의 비(妃)가 수렴청정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서도 헌종과 충목왕, 우왕 등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수렴청정이 이루어졌다. 

 대비는 마치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사람처럼 수렴청정의 권한을 행사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는 수렴청정을 하는 처소의 예까지 바꿔버렸다. 
 전례에 수렴청정의 장소는 편전이었고, 수렴청정을 하는 자는 발을 친 안쪽의 동쪽으로 가깝게 남쪽을 향해 앉도록 되어 있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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