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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적이 없는가?”
[연재소설 97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2-12 09:56:27최종 업데이트 : 2010-02-12 09:56:27 작성자 :   e수원뉴스
그림/김호영


"스스........"
나뭇가지들에 옷이 스치는 소리 같았다. 서유린이 가만, 뒤쪽 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직 칠흑의 어둠 뿐이었다. 스사아....... 바람이 뒷담 너머 무성한 나뭇잎들을 휘젓고 지나갔다. 바람 소리였는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서유린은 손가락 두께만큼의 사이로 연 물을 다시 닫았다. 

그 순간, 강희는 그의 방 밖 담 뒤에 있었다. 
통명전을 빠져나온 강희는 대궐의 전(殿)과 전을 휘돌아 쌓은 내담들 벽에 붙어 번을 서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서유린이 있는 궐내각사 숙직방까지 움직였다. 이제 담만 넘으면 채가 알아온 서유린의 숙직방이었다. 

국상 중인 대궐의 깊은 밤은 칠흑 속에서 고요했다. 탁탁, 관솔을 태우는 불배롱 속의 소리만이 고요를 휘저을 뿐이다. 번을 서는 병사들의 움직임도 고인 물속에 잠겨 움직이는 것처럼 생기가 없어보였다. 임금이 죽은 비상의 상태라고는 하지만 쏟아질 듯 비를 머금은 낮은 먹구름 덮인 깊은 밤의 칠흑은 다른 세상처럼 달라보였다. 

벽에 몸을 붙인 채 숨을 고르며 강희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정말 잘한 것인지 다시 되짚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강희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했다. 강희는 서유린 또한 자신처럼 전날 후원에서의 일 때문에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화성유수에게 모든 것을 말하자.'

강희는 이제 묘적사의 비밀을 지킬 이유조차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다. 묘적사가 불에 타고, 묘적사에서 양성되던 무사들이 죽임을 당한 이상, 묘적사의 존재를 비밀에 붙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희는 낮에 본 사내의 눈빛을 떠올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사내였다. 가늘고 긴 눈은 뱀처럼 차갑고 용의주도한 느낌을 주었다. 강희는 사내가 강희에게 한 말을 생각했다.  
"나를 본 적이 없는가?"

말을 하는 사내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었다. 강희는 사내를 다시 떠올리며 사내의 물음처럼 아는 자의 얼굴이 아닌지 되짚었다. 알 수 없었다. 

"숨겨야 하는 일인 겁니까?"
대신 강희가 사내에게 던진 말이었다. 묘적사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문 탓에 강희는 다른 것을 고려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참.....당돌한 계집이로구나."

강희는 그 말과 함께 떠올랐던 사내의 차가운 미소를 생각했다. 불현 듯 사내의 얼굴이 낮이 익다는 느낌은 그때 들었다. 
"나는 분명 시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장례를 치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네 이년."
사내가 사라진 늙은 심환지처럼 강희를 대했다. 강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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